호텔 객실 내에 위안부 강제동원과 난징 대학살 등 만행을 부정하는 우익서적을 비치한 일본 아파(APA)호텔의 한 체인 영업장. 도쿄/연합뉴스
다들 설 명절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이번 설을 활용해 일본을 여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도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무려 500만명이었습니다. 500만명이 일본을 찾았으니 이분들 가운데 ‘도요코 인’이나 ‘아파(APA) 호텔’ 같은 일본의 호텔 체인을 이용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들 체인 호텔의 하루 숙박비는 5000~1만엔 안팎입니다.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깨끗한 침대와 화장실이 갖춰진 평균적인 호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 일본인들뿐 아니라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이들 호텔을 자주 이용합니다.
저는 지방 출장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해당 지역에 도요코 인이 있는지 확인하곤 했습니다.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걷다 저만치 도요코 인의 파란색 네온사인 간판이 보이면 웬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아! 이제 씻고 자야지” 하는. 저는 5% 할인 회원 카드까지 갖고 있는 도요코 인 애용자입니다.
그러나 이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호텔 체인인 아파 호텔은 거의 이용하지 않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뒤 재일동포들로부터 “거기 사장이 우익”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호텔을 이용해 본 적이 없기에 객실 서랍에 위안부 문제나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책이 놓여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도쿄에 취재차 방문한 저희 국제부 팀장에게 별 생각없이 저희 집에서 가까운 이 아파 호텔을 예약해줬던 기억이 나는군요. 나중에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아파 호텔이 중-일 역사 갈등의 새로운 불씨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일본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들의 수는 무려 637만명이었습니다. 저희 집 바로 옆에도 아파 호텔 체인점이 있는데 이 호텔을 이용하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중국인입니다. 이들 가운데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이 객실 서랍에 비치된 이 호텔 그룹의 사장인 우익인사 모토야 도시오가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국가론> 등의 서적을 보게 된 모양입니다. 이 책은 난징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있는 책입니다. 중국인들이 이런 사실을 중국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를 통해 공유했고, 그러자 <환구시보> 등 중국 주요 언론들이 책 회수를 요구하는 기사를 쏟아냅니다. 그런데도 호텔 쪽이 “책을 치우지 않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자, 장리중 중국 국가여유국 대변인은 24일 “아파(APA) 호텔이 (객실에서 난징대학살 등을 부정하는 책을 빼라는 요구를 거부하는 등) 잘못된 방식을 고수하는 것을 고려해 모든 국외여행 기업과 온라인 여행 플랫폼에 이 호텔과의 협력을 전면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일본행 단체 관광객과 일반 여행객들에게 자발적 제재를 실시해 이 호텔에 가지말 것을 호소한다”는 방침을 내립니다. 국가가 직접 ’아파 호텔’ 이용 금지령을 내린 셈이다.
이 불매 운동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국가가 직접 외국의 민간기업을 상대로 불매 운동을 벌이는 건 좀 거친 대응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선 일본 우익들이 보이는 얄미운 행태에 대해 중국 당국이 철퇴를 내리는 모양이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논란에서 확인되듯, 일본을 향한 중국 당국의 공격은 앞으로 한-중 사이에 껄끄러운 마찰이 발생할 경우 언젠가 한국을 겨냥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합니다만), 중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불매운동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국가가 공식적으로 직접 나서 이를 지시하는 것에는 다소의 저항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일본 정부의 반응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일본 주요 현안에 대한 정부의 견해를 밝히는 관방장관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25일 참의원 본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오전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아닌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 부장관이 회견에 나섰습니다.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의 “뼈를 발라버려야 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 하기우다 부장관입니다. 이 인물은 아베 신조 총리와 역사관이 매우 비슷한 측근 중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일본 기자들이 아파 호텔 사태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아파 호텔 건으로 어제 중국의 국가여유국(관광국)이 중국 여행업자에게 호텔 이용 중지 방침을 내렸다.
“어제도 말했지만 민간 기업의 개별적 대응에 대해 정부가 참견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특별한 코멘트는 없다.”
중국의 조처를 맹비난하는 발언이 나올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습니다. 질문을 한 일본 <후지테레비>(산케이신문 계열회사)의 여기자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포기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던집니다.
-관련해서 중국에서 일본에 오는 방일 관광객에는 영향이 있을까.
“일본에 호텔이 아파 호텔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 형태의 호텔이 있고, 각국에 여러 선호가 있으니 영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런 전제에서 말하자면, 관광을 통한 일-중간 인적 교류는 매우 중요하며 특히 올해는 일중 국교정상화 45년이 되는 해다. 일본에서도 많은 이들이 중국을 방문할 것을 기대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예전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방문해주시길 기대하고 있다”
역시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중국 정부가 불매 운동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추가 질문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기우다 관방부장관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중국 여행업자에 대한 조처를 내린 것은 정부의 기관이다. 앞으로 중국 정부에게 조처를 취할 예정은 있나?
“모두에 말한대로 민간 기업의 접객 서비스 일환이다. 그에 대해 중국 여행국이 어떻게 판단했는지에 대해 일본이 직접 관여할 문제로는 보지 않는다. 특별한 대응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일본 정부는 왜 이런 태도를 보일까요. 역시 중국 관광객들의 파워 때문입니다. 현재 일본의 관광업은 최대 활황기를 맞고 있습니다. 2009년 678만명이었던 일본 관광객 수는 3·11 일본 대지진 참사가 터진 2011년에는 621만명으로 감소합니다. 그러나 3·11 참사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해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중국 중간층이 급증하면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도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즉, 일본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2013년 사상 처음 1천만명을 넘긴 1036만명을 기록하더니, 2014년 1341만명, 2015년 1973만명, 2016년 2403만명까지 껑충 뛰어오릅니다. 특히 2014년부터는 구매력 좋은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의 여러 상품을 싹쓸이 한다는 뜻의 ‘바쿠가이’(폭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합니다. 외국 관광객 폭증이 아베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큰 버팀목이 되고 있는 셈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해외 관광객 폭증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입니다. 일본 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관광객 2403만명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국가는 중국(673만명)이었습니다. 2위는 한국(509만명), 3위는 대만(416만명), 4위는 홍콩(183만명), 5위는 미국(124만명)입니다. 즉, 현재 일본 관광을 떠받치는 것은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등 일본 주변에 있는 아시아 이웃들인 셈입니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 실태를 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인들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같은 아시아인들보다 서양인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라는 점에 대해 엄청난 신경을 씁니다. 500만~600만명의 관광객을 보내는 이웃은 제쳐두고 20만~30만명의 관광객들 밖에 없는 영국(29만2000명), 프랑스(25만3000명)인들이 일본을 편하게 여행하도록 하려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나를 고민하는 꼴입니다.
최근 일본 관광의 가장 큰 고민은 중국인들의 ‘바쿠가이’가 조금씩 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일본 관광청 자료를 보면, 2016년 일본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총소비액은 전년보다 7.8% 줄어든 3조7476억엔에 그쳤습니다. 1인당 평균 소비액도 전년보다 11.5% 줄어든 15만5896엔으로 줄었더군요. 어찌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처음엔 신기해서 일본 쇼핑센터를 싹쓸이 했던 중국인들이 이제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해 가격 비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맞서 이제 일본 각지의 면세점들이 판매 전략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3년 9월부터 일본에 살아왔습니다. 일본은 정말 보고 즐길 곳이 많은 좋은 관광지입니다. 특히 홋카이도의 시레토코를 추전합니다. 저멀리 오호츠크해에서 내려오는 유빙과 기타 키즈네(여우), 야생 곰과 사슴을 볼 수 있습니다. 곰은 실제로 보게 되면 생명에 지장이 생길 수 있으니 직접 보면 안 되겠군요.
그러나 생각해 봅니다. 일본의 관광을 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쓸데없는 예산을 들여 관광지에 새로운 안내 간판을 세우는 것보다 일본이 자신이 저지른 지난 과오에 대해 주변국들에게 겸허히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평소 조금씩 아껴모은 돈을 털어 큰 맘 먹고 나선 해외 여행지에서 기분 나쁜 일을 겪는 것보다 속상한 일이 없습니다. 특히 묵고 있는 호텔 서랍에 난징대학살과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책을 발견하게 된다면, 더 그렇겠죠.
여러분들 ‘아파 호텔’에 묵으신 적이 있나요? 개인 의견을 말씀 드린다면 도요코 인이 더 좋습니다. 숙박비도 더 저렴한데다 조식이 무료입니다.
그럼 좋은 설 명절 보내시길!
도쿄에서 길윤형 특파원이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