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11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다카하마 원전 재가동 반대’ ‘이카타 원전 재가동 반대’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당의 ‘점진적 탈핵’ 정책을 뒤집은 아베 신조 정부는 다카하마 3·4호기, 이카타 3호기 등을 재가동시켰다. 도쿄/AP 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이 7일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위해서는 ‘최신 기술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법규정을 무시한 채 가동 35년이 된 월성 1호기의 수명을 임의로 늘리려 한 정부(원자력안전위원회) 결정에 제동을 거
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최악의 원전 사고인 ‘3·11 후쿠시마 원전 참사’를 겪은 일본의 원전 가동 현황은 어떤지 관심이 모아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의 상황도 20기 이상의 원자로를 가동 중인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도 원전 가동을 멈추려는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고, 이를 지지하는 사법부의 혁신적인 판결도 나오고 있지만 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이는 아베 정권의 폭주를 막진 못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탈핵을 선택하자”는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하며 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였고, 더욱이 재가동하는 원자로의 범위를 ‘수명 40년’을 넘긴 노후 원전까지 확대하는 중이다.
2011년 3월11일 발생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20만명이 넘는 이들이 고향을 등졌다. 일본 정부는 3·11 참사 뒷수습 비용을 애초 11조엔으로 예측했지만, 지난해 12월 현재 한국의 1년 예산의 절반을 넘는 21.5조엔(약 220조원)으로 높여 잡았다.
3·11 참사를 직접 겪은 간 나오토 민주당 정권은 2011년 7월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며 탈핵을 결단했다. 이에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경제적 효율성’을 이유로 “조속히 원전을 재가동시켜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민주당(현 민진당) 정권이 택한 건 ‘절충론’이었다. 간 총리의 뒤를 이은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2012년 9월 “2030년대까지 ‘원전가동 제로’”를 목표로 제시했다. 2030년이면 현재 가동 중인 일본 내 원전들이 신규제기준에 의해 ‘40년’으로 정해진 수명을 다하게 되는 시점이다. 당장 탈핵 실현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현존하는 원전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는 원전을 가동하고 새 원전은 짓지 않아 자연스럽게 원전이 소멸되는 형태로 점진적 탈핵을 유도해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일본 정부는 2012년 9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원자력규제위원회를 발족시키고, 2013년 7월 3·11 참사 교훈을 반영한 ‘신규제기준’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전력회사들은 일단 모든 원자로의 가동을 멈춘 뒤 ‘신규제기준’에 따른 심사를 받게 됐다. 심사를 통과한 원자로만 재가동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신규제기준’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전력회사가 자율적으로 책정해 왔던 중대 사고 대책을 의무화하고, 사고가 일어나도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나오지 않도록 안전대책을 다중화하며, 공기 충돌 등 테러 대책 내용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원전 주변 지자체에 원전 반경 30㎞ 이내 주민들을 위한 ‘피난 계획’ 작성을 의무화한다.
그러나 2012년 12월 재집권한 아베 정권은 이런 민주당의 ‘점진적 탈핵’을 뒤집는다. 아베 정권은 2014년 4월 “원자력은 에너지 수급구조 안정성에 기여하는 중요한 ‘기저부하’ 전원”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했고, 그해 7월에는 2030년에 일본이 화력·수력·원자력·재생가능 에너지 등 다양한 에너지원의 비율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를 정한 ‘최적의 비율’(베스트 믹스)을 제시한다. 아베 정권은 2030년 원전 비율을 전체 일본 에너지의 20~22%로 정했다. 3·11 참사 전인 2010년(28.6%)보단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수명이 ‘40년’으로 정해진 일부 노후원전을 재가동하거나 새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
일본의 각 전력회사들은 2015년 8월10일 가고시마현 센다이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신규제기준을 통과한 원자로를 하나둘씩 재가동하고 있다. 규제위의 1월 현재 자료를 보면, 현재 일본에 있는 58개 원자로(건설 중 포함) 가운데 폐로가 결정된 건 참사가 일어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 6기를 포함해 총 14개다. 현재 규제위 심사가 마무리돼 가동이 이뤄진 원자로는 센다이 1·2호기, 다카하마 3·4호기, 이카타 3호기 등 5개, 심사를 통과해 가동을 기다리고 있는 원자로도 다카하마 1·2호기, 미하마 3호기, 겐카이 3·4호기 등 5개다.(그래픽 참조) 센다이 원전이 처음 재가동되던 날, 간 전 총리는 원전 앞에서 진행된 항의 집회에 직접 참석해 원전 재가동을 결정한 아베 총리를 향해 “망국의 총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시민사회는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 방침에 맞서 각지에서 다양한 항의 집회와 법정 투쟁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일본 시민사회가 거둔 귀중한 ‘1승’이 지난해 3월9일 일본 시가현 오쓰 지방재판소가 내린 가처분 결정이었다. 오쓰 지방재판소는 1985년 운전을 개시한 다카하마 3, 4호기의 재가동을 막아달라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야마모토 요시히코 재판장은 “원전 사고 발생시 입을 수 있는 피해에 견줘 원전의 경제적 효율성이 우선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야마모토 재판장은 결정문에서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 가동의 위험성이 구체화됐다. 원전에 의한 발전이 얼마나 효율적이든, 발전에 필요한 비용 면에서 얼마나 경제적 우위성이 있든, 그에 의한 손해가 구체화됐을 때 (원전 가동의 장점이 이런 위험성보다) 반드시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원전 사고로 인한) 환경 파괴는 일본의 범위를 넘을 가능성도 있다. 발전의 효율성을 내세워 재화를 입을 위험과 교환해야 할 사정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간사이전력은 이 결정에 불복해 가처분 결정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결정 외에는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 아베 정권의 위세 앞에서 일본 시민들의 저항은 하나둘씩 꺾이고 있다. 현재 규제위는 ‘40년 가동’을 원칙으로 삼은 일본 원전의 수명을 20년 늘려 60년 동안 가동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는 중이다. 특히 규제위가 2016년 6월, 1974~76년 완공된 노후 원전인 다카하마 원전 1·2호기의 수명을 20년 연장했을 땐 엄청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정권이 원전 비율을 20~22% 정도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만큼 10기 정도의 노후 원전이 재가동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규제위는 “신규제기준에 따른 심사를 통과했다는 게 해당 원자로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다나카 혣이치 위원장)라는 논리로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 방침을 추인중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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