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일본 도쿄 주오구 거리에서 한 남성이 커다란 양산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일본 남자를 폭염에서 구할 것은 한 자루의 양산?
지난달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을 경신한 일본에서 남자도 온열 질환에 걸리지 않으려면 양산을 쓰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3일 나고야에서 최고 기온이 섭씨 40.2도를 기록해 72년 만에 이 지역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는 등 일본의 폭염은 계속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3일 폭염이 본격화된 지난달 중순께부터 지금까지 도쿄 긴자의 생활용품점 ‘로프트’에서 팔리는 남성용 양산 수가 지난달 초에 비해 6배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남성용 양산 판매가 늘자 로프트는 지난달 초부터 남성 양산 판매대를 따로 설치했다.
이 신문은 또 현재 오사카 한큐백화점에서 파는 남성용 양산은 40여 종류에 달하지만, 몇 년 전까지는 종류가 그 절반 이하였다고 전했다. 남성용 양산은 우산과 양산 겸용인 경우가 많으며, 30~50대가 주 고객층이라고 한다. 외근이 잦은 영업직이 많이 구입한다.
일본에서 팔리는 전통적 남성용 양산은 ‘은행원 양산’으로 불리는 커다란 은색 양산이다. 이 양산은 15년 전부터 판매돼 왔다.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는 남성 은행 영업사원을 보고 우산 판매점이 개발한 것이 시초다. 하지만 이 우산은 비교적 최근까지 남성들에게 별 인기가 없었다. 살이 타는 것을 싫어하는 여성과 장시간 스포츠 관람을 하는 이들이 간혹 구입하는 정도였다.
사이타마현 공무원들이 조직한 ‘양산남자 확대 운동대’가 양산을 들고 있는 모습. 사이타마현 누리집
남성도 양산을 쓸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환경성이 재킷을 벗고 양산을 쓰면 땀의 양을 20% 정도 억제할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남성용 양산 상품 개발·보급도 필요하다”고 밝힌 뒤다. 이후 2013년 남부 고치현에서 41도까지 오른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양산을 쓰는 남성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양산 남자’라는 말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본에서도 “양산은 여성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이런 고정관념을 깨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2011년엔 ‘남자도 양산을 쓰자’는 이름의 단체가 결성됐고, 지난해 사이타마현 환경부 공무원 20명이 ‘양산 남자 확대 운동대’라는 단체를 발족했다. 일본에서 더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사이타마시와 구마가야시 등 사이타마현 내 8개 시 직원들이 동참하며 이 모임은 100명 규모로 확대됐다. 지난 1일에는 양산 제조 업체인 오로라에서 이 단체에 남성용 양산 70개를 기부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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