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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39살 샐러리맨의 치매, “불편해도 불행은 아니었다”

등록 2018-10-23 11:40수정 2019-02-07 16:52

장년층 인지증 당사자 ‘단노 도모후미’
진단 뒤에도 회사 계속 다니며 강연 활동
“인지증이라고 곧 누워만 있게 되지는 않아
되도록 진단 전과 같은 생활 할 수 있게 해야”
단노 도모후미가 지난 18일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장년층 인지증(초로기 치매)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단노 도모후미가 지난 18일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장년층 인지증(초로기 치매)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인지증(치매)에 걸린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그런데 인지증 걸린 사람 같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일본 도요타자동차 계열사 사원인 단노 도모후미(44)는 한국의 초로기 치매에 해당하는 ‘장년층 인지증’(65살 이하일 때 발병한 인지증)을 앓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치매에 해당하는 ‘치호’가 모욕적인 표현이라며 2004년부터 인지증으로 명칭을 바꿨다. 18일 <한겨레>는 인터뷰를 위해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그를 만났지만,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려웠다. 단노는 커피숍 위치를 먼저 안내하고, 인터뷰가 끝난 뒤 혼자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회사에도 여전히 다닌다. 일본 전역을 돌며 한 달에 4~5차례 강연을 한다. 지난해에는 <단노 도모후미, 웃으며 살아가기>라는 책을 냈다.

“사람들은 인지증이라고 하면 흔히 증상이 중증에 이른 사람만 떠올리죠. 그런데 중증까지 간 경우보다 초기나 중기가 더 많아요. 인지증 전체 이미지가 잘못돼 있어요. ‘환자’ 대신 ‘당사자’라는 말을 쓰기를 원해요. 환자라고 하면 중증까지 진행된 경우만으로 보기 쉬워서 그래요.”

그는 39살 때인 2013년 알츠하이머성 인지증(인지증에는 알츠하이머, 혈관성 등 수십가지 원인 질환이 있다) 진단을 받았다. 인지증 진단 전까지 영업사원으로 일했던 그는 매달 약 2000만엔(약 2억원) 어치 자동차를 파는 ‘잘 나가는’ 영업맨이었다. 영업 실적 1위도 여러번 달성했다.

단노 도모후미가 지난 18일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장년층 인지증(초로기 치매) 경험을 이야기 한 뒤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이날 혼자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단노 도모후미가 지난 18일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장년층 인지증(초로기 치매) 경험을 이야기 한 뒤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이날 혼자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2009년께부터 고객과 나눈 이야기가 잘 기억나지 않았는 때가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엔 고객 얼굴은 물론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동료의 이름조차 기억하기 어려웠다. 답답한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가 ‘알츠하이머성 인지증’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하는 생계 문제였다. 당시 큰딸은 중학교 1학년, 작은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회사에 진단 사실을 고백했다. 사장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테니 회사로 복귀하라. 총무·인사부에 자리를 마련하겠다.” 회사 복귀 요청은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다.

그는 현재 다른 사원보다 퇴근을 1시간 이른 4시30분에 하는 것 빼고 ‘특별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점은 노트에 업무 내용을 세부적으로 적어서 대응하죠. 사람 얼굴 잘 기억 못 하는 점은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니까, 주위에 물어봐요. 최근에는 증상이 진행돼서 지하철표 사는 법을 잊어버리곤 하지만, 역무원에게 인지증이라고 밝히고 물어보면 해결할 수 있어요.”

일본에선 단노처럼 인지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인지증이 된 내가 전하고 싶은 것>(사토 마사히코), <인지증이라도 괜찮아>(후지타 가즈코), <인지증인 나는 ‘기억보다 기록’>(오시로 가쓰시>도 인지증 당사자들이 낸 책이다. 일본 내 인지증 치료 1인자인 하세가와 가즈오 박사는 지난해 10월 강연에서 자신이 인지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2년 기준으로 인지증에 걸린 사람이 462만명으로 추산된다고 2015년 발표했다. 장년층 인지증은 2009년 조사에서 3만8000명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으며, 최근에는 이보다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단노처럼 인지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한 당사자들이 입을 모아 “인지증에 걸려서 불편하지만,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이야기한다.

인지증 진단 직후에는 당사자들은 크게 충격을 받고 실의에 빠진다. 단노도 “진단 뒤 1년 넘게 매일 밤 울었다. 공포와 불안에 짓눌려 누우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년층 인지증이라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젊을수록 진행이 빠르다. 곧 누워만 있고 아무것도 못할 수 있다’는 부정적 정보만 나왔어요.”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보다 먼저 자신의 병을 고백했던 당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인지증 가족회가 전국에 존재한다. 가족회를 통해서 다른 당사자들도 만났다. “가족회를 통해서 히로시마에서 온 당사자와 만난 일이 있었어요. 밝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 인지증 진단자라고 보기 어려웠죠. 저도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이 낸 책 제목처럼 밝게 웃었다. “인지증에 걸렸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은 제가 말을 잘한다고들 해요.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외부 활동을 계속하고 당사자 수백명을 만나봤기 때문이에요” 그도 인지증이 중증에 이른 경우에는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는 (증상이 심해서 가족들이) 힘들었다’며 공격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도 반드시 초기일 때가 있었어요.”

그는 3년 6개월 전부터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를 상담해주는 ‘오렌지 도어’ 사업을 하고 있다. 도호쿠복지대학에 있는 카페에서 한달에 한 차례씩 여는 행사인데, 가족은 상담할 때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가족이 옆에 있으면 당사자 대신 대답을 해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지증 진단을 받으면 가족들이 뭐든지 대신 해주려고 해요. 초기라고 해도 중증 대응을 하니, 초기였던 사람이 금방 중증이 돼요. 심한 경우에는 당사자를 앞에 놓고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못해요’라고 말하는 가족도 있어요.”

그는 인지증 진단을 받은 이들에게 “인지증 진단 뒤에도 되도록 진단 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꼭 도움이 필요한 한두가지만 도와달라고 하자”고 말했다. 사회적 지원에 대해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지원자가 뭐든 대신 해주려는 식이 많다. 당사자에게 무얼 원하는지 먼저 물어보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가족이 힘들다는 이야기만 많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센다이/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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