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치매협회 등의 주최로 지난해 6월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치매협회 제공
“사소한 일은 실패해도 괜찮은 게 아닐까요.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해요. 병에 걸렸지만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고 싶어요.”
인지증(치매)을 앓고 있는 다케가미 에미코(66)는 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공동치매대회’에 참석했다. 다케가미는 연단에 올라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말했지만, 한국에선 진단자 가족 1명이 나섰을 뿐 당사자는 공개석상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 행사를 개최한 한국치매협회 손치근 사무총장은 “다케가미가 웃으며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을 보고 한국 참가자들이 상당히 놀랐다. 한국에선 아직 치매 투병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힐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인지증 투병 사실을 공개하는 이들은 소수지만, 조금씩 당사자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일본 정부도 2015년 부처 합동으로 ‘신 오렌지 계획’이라는 정책을 만들어, 개호(돌봄)시설 이용 위주에서 지역 사회의 도움을 받아 기존 생활을 유지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진단자를 돕고 병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인지증 서포터’ 양성,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인지증 연수, 당사자들이 상담을 받거나 쉴 수 있는 ‘인지증 카페’ 개설 지원 사업을 한다. ‘인지증 카페’는 2016년 기준 무려 4627곳이 운영 중이다.
중증 환자가 각종 질병으로 돌봄시설을 이용해야 할 경우엔 기존의 개호보험을 이용한다. 가구의 연 수입에 따라 본인 부담률은 10~30%이다. 일본에선 만 40살이 되면 개호보험료가 건강보험료에 포함돼 청구된다.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인 일본에서 인지증은 이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보편 질병’으로 인식된다. 현재는 65살 이상 인구 7명 중 1명이 인지증 당사자이지만 2025년엔 5명 중 1명이 될 전망이다.
한국도 일본과 같은 길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 중앙치매센터가 올해 내놓은 ‘대한민국 치매 현황’을 보면, 지난해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 수는 약 66만명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통해 중증 환자의 의료비 본인 부담률을 10%로 낮추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책이 의료비 부담 완화에 집중돼, 당사자들이 이전 생활을 유지하도록 돕는 단계까지는 못 나가고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