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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전시장 공개…“조선인 강제 노역 피해 기린다” 약속 온데간데 없어

등록 2020-06-14 19:52수정 2020-06-14 20:44

군함도 등 포함 ‘산업혁명 유산’ 정보센터 일반 공개
2015년 등재 위해 “피해자 기리겠다”던 약속만 적어
안내문 하단에 표시…“괴롭힘 없었다”는 주장만 가득
교도 “과거 사실 은폐·역사 수정주의 조정 비판일 듯”
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 정보센터’ 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를 본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전시되어 있다. 산업유산 정보센터 제공
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 정보센터’ 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를 본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전시되어 있다. 산업유산 정보센터 제공
“(하시마 등 일부 산업시설에서)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하에서 ‘강제노역’했던 일이 있었다…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정보센터 설치 등과 같은 조처를 하겠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위치한 ‘산업유산 정보센터’. 조선인 강제노동이 이뤄졌던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 등이 포함된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관련 전시시설인 이곳이 15일 일반 공개된다. 일반 공개를 하루 앞둔 14일, 일본 내외신 일부에 공개된 이 시설에 들어서면, 입구에 일본이 2015년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까지의 연혁이 적혀 있다. 연혁 맨 아래, 당시 유네스코 회의에서 일본 정부 대표가 했던 이 발언이 적혀 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산업유산 정보센터에선, 이 문구 정도 외에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하면서 약속했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징용 관계 문서 읽기’라는 안내판에는 ‘일본이 태평양전쟁 시기 국민징용령을 내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가 명확하게 기술돼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동 인구는 한반도와 일본 본토를 빈번히 왕래(했다)”라는 구절을 넣어서 조선인 노동자가 자유로웠다는 인상을 줄 우려도 있었다. 옆에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전문도 전시됐다.

면적 1078㎡ 규모의 이 전시장에는 조선인이 하시마에서 좋은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식의 역사적 왜곡을 하는 전시가 대거 포함됐다. ‘태평양전쟁 시기 하시마에서 살았다’는 재일동포 2세 스즈키 후미오(작고)의 생전 증언 등을 담은 영상과 안내판이 대표적이다. 그는 아버지가 하시마 탄광에서 일했다고 밝힌다. 그는 영상에서 ‘괴롭힘을 당했느냐’ ‘조선인이 채찍으로 맞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일을 해야 하는데 왜 때리느냐”고 답한다. 또 나가사키 조선소 ‘징용공’(강제동원)이었다는 대만 출신 노동자가 급여 명세서도 전시도됐는데, 강제동원 피해자가 급여를 제대로 받았다고 주장하고 싶은 의도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 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하시마에서는 위험한 해저 채탄 작업이 이뤄지는 등 노동 환경이 열악해 탈출을 시도하거나 탈출 도중 익사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생존자 증언이 존재하지만, 산업유산 정보센터엔 이런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시 내용은 일본이 산업혁명에 성공했다는 홍보 일색이다.

<교도통신>은 익명의 일본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일본 식민지 지배 당시 하시마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이 비인도적 대우를 받았다는 그동안의 정설을 ‘자학 사관’으로 보고 반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은 “과거 사실을 은폐하고 ‘역사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이라고 밝힌 시설들은 메이지 시대(1868~1912년)에 건설된 탄광·제철소들로, 하시마를 포함해 상당수 시설이 조선인 강제동원과 강제노동 역사가 있는 곳이다. 후쿠오카현 야하타제철소와 미이케탄광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있었고,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 동원됐던 조선인들은 원자폭탄 투하로 피폭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유네스코는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뒤 일본 정부로부터 이행보고서 성격의 ‘보전상황 보고서’를 제출받아왔다. 일본 정부는 2017년 첫 보고서에서는 2015년 등재 신청 당시의 약속과는 달리 강제노동 등의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반도 출신자가 일본 산업 현장을 지원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를 하겠다”고 했다. 유네스코가 2018년 7월 바레인 회의에서 ‘전체 역사 해석에 있어 국제 모범사례를 참고하라’고 권고했으나, 지난해 제출한 두번째 보고서에서는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언급 자체를 아예 빼버렸다. 한편, 일본 정부는 산업유산 정보센터 운영을 재단법인 ‘산업유산 국민회의’에 위탁했다. 이 단체는 일본 정부에서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 노동 분야 조사 연구 위탁을 받았던 단체이기도 한데, 조선인 강제노동을 부인하거나 희석하는 내용의 자체 보고서를 지속해서 작성해왔다.

산업유산 정보센터는 지난 3월 말 개관식을 열었으나 코로나19 감염 확산 영향으로 일반 공개가 연기돼 왔다. 15일부터도 당분간은 예약을 받아서 소수 인원에만 관람을 허용한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 정보센터’ 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옛 주민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증언도 함께 전시됐는데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가혹행위는 없었다는 일방적인 증언들이다. 산업유산 정보센터 제공
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 정보센터’ 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옛 주민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증언도 함께 전시됐는데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가혹행위는 없었다는 일방적인 증언들이다. 산업유산 정보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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