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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선거 여론조사 신뢰할 수 있나?

등록 2012-04-05 19:22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전화면접원들이 전화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전화면접원들이 전화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총선이 다가오면서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마다 조사 결과가 달라 그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의 여론조사 방식이 근본부터 심각한 문제점에 빠져 있어 발표 자체가 선거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분의 오류로 여론조사 자체를 부정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본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
혼란만 부추기는 여론조사 보도

여론이란 무엇일까? 월터 리프먼은 <여론>에서 주로 미디어에 의해 형성되는 ‘의사(pseudo)환경’과 ‘스테레오타입’에 의해 여론이 왜곡되는 점에 주목한다. 괴벨스는 더 나가서, 여론이라는 것은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선전을 통해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여론은 미디어의 산물이기도 하다.

선거 시기 여론 역전현상에 주목한 독일의 엘리자베트 노엘레노이만은 <여론의 정치사회학>에서 ‘침묵의 확산’과 ‘고립 공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노엘레노이만에 따르면 여론이란 “고립당할 위험 없이 사람들이 표현할 수 있는 태도나 행동방식”이다. 요컨대 주류 혹은 대중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고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여론조사에서 ‘침묵’하기 때문에 정확한 조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의 미디어도 선거철만 되면 여론조사 보도에 집착한다. 이번 19대 총선 여론조사 보도가 가능한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4일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는 혼란 그 자체였다. 조사기관별 지지도가 달랐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표본 대표성 심각한 문제 있고
제대로 예측한 적 거의 없어…
언론사의 ‘요망사항’을 사실로
포장하는 ‘선거개입’ 성격 짙어

주요 언론사의 여론조사 관련 기본 자료를 보면 결과가 왜 그리 다른지 짐작할 수 있다. 선거구의 크기나 특성과 무관하게 표본은 500~600명 선이고, 유선전화나 무선전화를 이용하여 무작위(RDD) 자동응답방식(ARS)으로 조사했다. 말이 무선전화지 실제로는 유선전화 중심의 조사일 수밖에 없다. 각 선거구 거주자의 무선전화 번호를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유선전화를 받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표본 대표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응답률도 10% 안팎에 불과했다. 전체 유권자 중에서 전화 미가입자나 무응답자가 빠져나가고, 아직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사람을 빼고 결과가 산출된다. 오차범위가 커질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무용론’은 선거 때마다 제기되었다. 특히 참여정부 이후 선거 여론조사의 경우 제대로 예측을 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때뿐이고 선거철이 되면 또 부정확한 여론조사 보도가 미디어를 도배하곤 했다.

언론사가 여론조사 보도에 함몰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경마저널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여론조사 중심의 보도관행 때문이다. 선거 쟁점과 공약 검증, 여야 후보 관련 정보 제공, 정권 심판과 같은 주요 이슈 검증 대신 후보자별 지지도 추이 중계에 혈안이 된다.

여론조사 보도 자체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여론조사 보도라는 이름으로 자사의 ‘요망사항’을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파성이 강한 미디어의 여론조사 보도는 명백한 선거개입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만연해 있는 여론조사 보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유권자 선택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혼란만 부추긴다. 그럼에도 주요 언론들이 여론조사 보도에 열을 올리는 것은 선거에 개입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공직자선거법에서 투표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공표를 막고 있는 것은 부당한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최소한 공식 선거운동 기간만이라도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금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계 있지만 거부하는 건 위험

최근 상반된 결과를 담고 있는 언론사 여론조사들이 쏟아지면서 유권자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선거 전후로 이뤄지는 여론조사, 특히 선거예측조사는 기법 측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총선으로 가면 예측이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인 대선과 달리 총선은 선거구가 246개 지역이고 각 선거구가 포괄하는 지역이 좁다. 포괄하는 지역이 좁을수록 큰 변수들보다 작은 변수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에 불확실성이 훨씬 크다. 둘째, 격전지일수록 집중적으로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권자의 피로도가 높아진다. 사실상 거의 매일 조사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응답거부율은 높아지고 표본을 ‘쥐어짜는’ 조사가 이루어진다. 여론조사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평일 조사인가, 주말 조사인가도 조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조사들이 집전화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평일 조사의 경우 직장인층이 체계적으로 배제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 점이 무시되기 쉽다. 넷째, 표본수의 문제다. 총선 지역구 조사는 대개 표본이 500명이고, 표본오차가 최대 8.8%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2%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격전지일 경우 여론조사로 민심을 제대로 포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전화조사 등 계량적인 조사에
과도한 의미 부여하면 안돼…
심층면접 등 질적 방법 통해
조사결과 설명하는 보완 필요

여론조사의 한계가 분명해졌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임의전화걸기(RDD) 방식, 휴대전화 방식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합의된 대안이 없다.

또 한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 정치적 의사표현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특히 권위주의 시절을 경험한 고연령층에서 응답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여론조사의 위기가 분명한데도 한편에서는 여론조사를 통해 야권 단일후보를 선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론조사가 ‘거짓’으로 비판당하는 모순적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여론조사가 위기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론조사라는 도구 자체를 통으로 거부하는 것은 위험하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문제 해결을 위한 정확한 진단과 이에 바탕한 대안이 필요하다. 다만 지금은 대안이 흐릿하거나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당분간 여론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여론조사를 둘러싼 현재의 논란은 전화조사와 같은 계량적 여론조사를 절대화하는 경향, 즉 과도한 위상과 의미를 부여하기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전화 여론조사는 대중의 여론을 파악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전화조사 중심의 여론조사 방식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여론을 파악하는 다양한 방안을 시도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별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심층면접, 좌담회, 유권자 배심원을 이용한 평가 등과 같은 질적인 방법들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전화 조사로는 표층으로 나타난 여론이 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하지만, 질적인 조사를 활용하면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

원인에 대한 설명 없이 여론조사 수치만으로 설득하기에는 유권자들이 충분히 앞서있고 깨어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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