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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우리가 지하철을 막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록 2022-02-28 15:43수정 2022-03-30 11:26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1월3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승강장에 모여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1월3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승강장에 모여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왜냐면] 김상희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

나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이자 장애 당사자이기도 하다. 활동가로 활동하기 전에는 줄곧 집에서만 지냈다. 내가 살던 집은 돌계단 10개가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어렸을 때는 10개의 돌계단이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쉽게 업혀 나갈 수 있는 3살짜리 꼬마로 머물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키가 자랐으며 몸무게도 늘어갔다. 가족의 도움 외에는 아무런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내가 성장할수록 가족의 부담도 더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포기해야 했고, 1년에 한번 외출도 못 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었던 10대 시절의 나는 천장과 벽을 보며 지냈다.

스무살이 돼서야 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이 드물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려면 전동휠체어를 타고 찻길로 세 정거장을 지나야만 했다. 멀리 있는 지역을 왕복하듯 몇시간이 걸려서야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하며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은 이동권 투쟁이 과격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진 것이라곤 장애가 있는 몸밖에 없는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 비장애 중심주의 사회를 멈춰 세우지 않으면, 우리의 요구는 메아리보다 못한 목소리에 그친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버스를 막고 지하철을 세웠다.

지하철은 대중교통이고 빠르고 안전하며 일정한 시간대에 운행되어 대부분 이동 시간을 예측 가능하게 해준다. 이 설명은 비장애 중심의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삶의 각본 중의 하나이다. 이 당연한 삶의 각본이 장애인에게도 해당이 될까? 지금도 나는 지하철로 낯선 곳에 가려면 도착역이나 환승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위험한 리프트만 설치되어 있다면 그 시간까지 계산해서 1~2시간 먼저 움직여야 한다. 이동권 투쟁 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장애인에게 이동의 목마름은 여전하다.

그래서 지난해 12월6일 혜화역 승강장에서 아침 8시부터 선전전을 시작했다. 지난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예산 반영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예산 반영 없는 법과 제도는 깡통일 뿐이다. 결국 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아침 7시30분에 지하철 막기 투쟁에 돌입했다. 두달여 동안 21회를 막았다. 비장애 중심의 예측 가능한 이동 하는 삶에 균열이 생겼다.

그러자 우리의 활동 영상마다 욕설이 쏟아졌다. 심지어 지하철 투쟁을 했던 동료들에게 직접적인 협박을 해 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영상에 쏟아진 댓글을 읽으면 언제 어디서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깊은 혐오가 느껴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투쟁을 멈출 수가 없다. 혐오와 협박과 신변의 위협까지 당하고 있지만, 묵묵히 견디고 있다. 그리고 이 투쟁이 언젠간 모두를 위한 투쟁이었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지금도 특정 지하철 환승역 엘리베이터 앞은 다양한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 줄 앞에 나는 몇십분 동안 기다려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싸워왔던 운동의 결과이자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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