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과 삼척 일대에 대형 산불이 계속된 지난 5일 저녁 경북 울진군 북면 하당리에서 한 주민이 민가 가까이 다가온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울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왜냐면] 홍석환 |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지독한 겨울 가뭄이 이어지면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언뜻 기상이변에 의한 자연재해로 보인다. 과연 산불은 ‘기후위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재앙일까?
산림청은 ‘숲가꾸기’를 하지 않으면 숲이 황폐화되고, 죽은 나무들과 가지, 잎이 쌓여 산불이 더욱 커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더해 마치 만병통치약 같은 논리로 수십년간 숲가꾸기를 위해 매년 많은 예산을 할애해왔다. 자연에 대한 간섭이 과연 재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왜 숲가꾸기를 하지 않는 국립공원에는 대형 산불이 발생하지 않는가? 인접 지역에서 큰 산불이 발생해도 국립공원으로는 확산되지 않는다. 숲의 황폐화와 산불의 확산을 막는다는, 숲가꾸기 예산이 투입되지 않는 곳인데 황폐화도, 대형 산불도 없다. 산림청의 주장과는 정반대 아닌가?
산불의 기세가 꺾이지 않아 인적·물적 피해가 계속되는, 산불을 끄기 위해 사투하는 수많은 분들의 노고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지금, 이 불편한 얘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시간이 지나고 관심이 잦아들면, 정부가 산불 억제 방법으로 내놓을 해결책이 숲가꾸기 강화일 테고, 이는 관련 예산 확대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이지만 산불에 많은 관심을 두는 지금 이 얘기를 해야만 하는 이유다.
산불이 발생하면 의례적으로 건조와 바람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자연재해로 돌리지만, 지금과 같은 대형 산불은 잘못된 정책에 기인한다. 숲가꾸기 사업은 숲을 건조하게 만든다. 자연숲은 빗물을 머금고 토양을 늘 촉촉하게 유지하지만, 숲가꾸기는 빗물을 오히려 숲 밖으로 내보낸다. 연간 유출량이 무려 1.7배나 증가한다. 저장하는 빗물의 양이 절반 가까이 줄어드니 당연히 숲은 말라간다. 또 숲 내부에서 바람을 빠르게 불게 한다. 그나마 적은 물을 빨리 증발시키고 불을 확산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숲가꾸기 방식이다. 소나무림은 자연 상태에서 많은 수분을 유지하는 참나무림으로, 다시 더 많은 수분을 함유하는 낙엽활엽수림으로 발달한다. 그런데 산림청의 숲가꾸기는 주로 불쏘시개가 되는 소나무만을 남기고, 산불을 억제하는 진짜 나무(참나무)를 포함한 낙엽활엽수들을 잡목이라 칭하여 베어버린다. 다량의 송진이 함유된 소나무의 마른 잎과 가지는 건조한 숲에서 쉽게 불에 탄다. 숲가꾸기 사업이 진행된 숲에 들어가면 바짝 마른, 기름을 두른 소나무잎들이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대형 산불이 멈추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산불에 취약한 환경을 만드는 데 세금을 투입한 결과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소나무숲은 인위적 간섭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낙엽활엽수림이나 혼효림으로 빠르게 변한다. 땔감 수확이 사라진 지금, 이미 대부분 산림은 혼효림 또는 낙엽활엽수림으로 변했어야 했다. 그걸 막은 것이다. 낙엽활엽수가 제거된 소나무림의 산불은 진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활엽수림지대까지 가야만 꺼진다.
산불이 꺼지고 국민 관심이 사라지면, 또 산림청은 산불 예방을 위해 숲가꾸기 예산 증액을 주장할 것이다. 재난에 따른 요청이니 아무런 비판이나 검토 없이 증액되고, 그렇게 우리 숲은 더욱 빠르게 망가질 것이다. 산불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겠지만 언론은 ‘기후 변화’나 이른 봄의 연례 이슈로 소비할 뿐, 잘못된 정책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형 산불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없어졌어야 했다. 숲가꾸기 예산이 없는 국립공원이 이미 명확한 답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