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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다시 한번 여성을 위한 선거를!

등록 2022-04-11 15:13수정 2022-04-12 02:36

윤석열 시대에 다시 읽는 수전 팔루디 _2
1988년 11월8일(현지시각) 미국 41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지 H. W. 부시가 부인 바버라 여사와 함께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흔드는 모습. 워싱턴/AP 연합뉴스
1988년 11월8일(현지시각) 미국 41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지 H. W. 부시가 부인 바버라 여사와 함께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흔드는 모습. 워싱턴/AP 연합뉴스

[왜냐면] 조고은 | 번역가, <열흘태엽> 발행인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듯하지만, 투표권이 없어서 혹은 투표권이 있는데도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대선 후보 티브이 토론에서 심상정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여성가족부 폐지가 왜 청년 공약이냐고 물으며 ‘여성 청년도 유권자’임을 잊지 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에서도 페미니즘이 주요 쟁점이었던 1984년과 1988년의 대통령 선거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여성들이 유례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선거임에도, 민주당은 공화당의 레이건 후보와 부시 후보에게 번번이 패배했다. 하지만 팔루디는 그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지 않는다.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보수 인사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1980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레이건과 그의 행정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노골적으로 축소하는 정책을 펼쳤다. 미국의 여성들은 레이건 정부가 성평등은 고사하고 소중한 보수적 가치라고 강조하던 ‘가족’이나 ‘모성’조차 돌보지 않는다는 현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때마침 1984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여성 정치인 제럴딘 페라로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우며 공화당과의 차별성을 확실히 알렸고, 여성 유권자들은 수백만명의 추가 지지와 역대 최고의 기부금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극우 언론이 페라로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그녀의 평판이 나빠지자, 어리석게도 민주당은 열렬했던 여성들의 지지를 다 잊고 여성 후보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는 왜곡된 해석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포기하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며 임금 평등, 사회적 평등, 재생산 권리를 요구했다. 그 추진력으로 1988년 대선 초반에는 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가 앞서나갔고, 여성 투표자 자체도 남성보다 1천만명이나 더 많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초지일관 남성 편향을 고집한 공화당의 눈치만 보며 어정쩡하게 반여성적 태도를 보였다. 압도적으로 민주당에 집결해 있던 여성들의 표는 흐지부지 공화당으로 흩어졌고, 그렇게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마치 여성들의 표는 표도 아닌 양, 거대 양당은 여성정책을 후퇴시켰고 여성 정치인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는 전사회적으로 여성들이 보수화되거나 여성운동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지지를 받던 민주당마저 여성들의 정치적 요구를 부정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레이건 정부는 일터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고용차별, 임금차별, 승진차별을 용인했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제공되던 지원을 삭감했다. 그런데도 1988년 절반에 가까운 여성들이 또다시 공화당의 부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하면, 마치 공화당 지지자는 무슨 손해가 돌아와도 매번 공화당을 찍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전 팔루디는 백래시의 시대에 정치권이 여성을 배신하면 할수록 여성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페미니즘을 요구하며 선거에 참여했음을 수시로 강조한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가 여성을 대변할 생각이 없음을 절감한 1988년 대선 이후, 여성들은 양대 정당이 아닌 여성단체를 지지하겠다며 제3의 페미니즘 정당을 창당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창당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 비난을 퍼부어대자,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조차 여성들보다 백래시의 목소리를 더 크게 의식하면서 페미니즘 정당의 요구를 정치적 힘으로 집결해내지 못했다고 팔루디는 평가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 나는 그를 지지한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세상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정말로 결국은 부동산이고 지역감정이라면, 한국 정치엔 절망만 남을 뿐이다. 하지만 수전 팔루디가 <백래시>에서 보여주었듯 유력한 정당들이 사회 구성원의 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기에, 선거에서도 의견이 흐지부지 흩어져버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선명해진다. 정당들이 여성과 소수자의 요구를 분명히 대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는 그저 기득권 놀음이라며 좌절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정치 역량을 내처 포기해버릴 순 없다. 다시 한번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선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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