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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났다고 안전경영인증제 없앤다? 거꾸로 가는 안전대책

등록 2022-07-27 19:00수정 2022-07-28 02:36

지난 6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에서 시공사인 에이치디씨(HDC)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들이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에서 시공사인 에이치디씨(HDC)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들이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임영섭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

안전보건공단에서 운영하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MS) 인증제도의 폐지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증제도는 사업장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하는 수준을 평가해 인증하는 것이다. 요즘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하고 있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었는지를 점검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폐지 논란의 시작은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붕괴사고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이 이 인증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인증을 받은 사업장에서 사고가 났으니, 인증의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수개월에 걸쳐서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을 점검받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간다. 이를 위해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기도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해당 업체의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기회가 된다. 인증을 받은 기업은 검증된 안전경영 시스템을 확보하게 되고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게 된다.

재해 재발 방지대책을 세우는 데 있어서 기본 원칙은 원인을 철저하게 찾아서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위 두 사고의 경우는 공기 단축을 위한 무리한 공사 진행, 작업 절차를 지키지 않는 관행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인증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검증된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이 이러한 행위를 조장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대형사고가 나면 사회적인 관심 속에서 너도나도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다. 안전담당 기관은 신속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외부 압박에 조급하게 마련이다. 자칫 신중하지 못한 판단으로 엉뚱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담당 기관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지난해 9월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발간한 한 보고서에 소개된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의 사례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5년 올턴타워스 테마공원에서 탑승객의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의회는 전국 놀이공원의 시설 점검과 대책을 신속히 실행하라고 압박했다. 산업안전보건청은 ‘이미 놀이시설에는 기존 전략이 잘 세워져 있고 단 하나의 사고로 놀이산업 전체를 판단하지 말라’며 ‘철저히 사고조사에 집중하여 과도하게 대응하는 것을 자제하자’고 설득해 받아들여졌다.

인증 사업장에서 사고가 났다고 제도 자체를 없애려는 것은 외부 압박에 속절없이 굴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 합리성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인증받은 안전모를 썼는데도 머리에 상처를 입어 사망했다 하여 안전모를 철모처럼 만들라고 하거나 보호구 인증제도를 없앨 수 없는 노릇이다.

담당 기관은 인증제도가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 재해 예방에 기여한다는 점, 하지만 이것만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만능이 아니라는 점,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이 더 필요하다는 점 등을 잘 설명해 당국과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1972년 발간된 로벤스 보고서는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영국을 안전선진국으로 이끈 토대다. 그런 이 보고서의 서두에 이런 언급이 있다. “작업장의 안전보건은 광대하고, 다양하고 복잡한 연구 분야이다. 누구도 그것의 모든 양상과 관점을 권위 있게 말할 수 없다. 이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우리가 부족함이 없다고 감히 주장하지 않는다.”

안전관리에 ‘전가의 보도’는 없다. 여러 수단이 함께 작용해서 재해가 발생할 확률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안전보건경영 시스템 인증제도는 그중에서도 근본이 되는 예방 수단이다.

인증 사업장에서 사고가 났다면 그 원인을 줄이기 위해서 현장 적합성을 높여야 하는지, 이행의 검증을 강화해야 하는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이 더 중시되는 분위기는 기회다. 의지가 있는 중소기업이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제도를 면피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더 권장하고 필요하다면 개선하여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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