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폭우로 집 앞 하천이 넘치고, 도로가 침수됐다. 필자 제공 영상 갈무리
[왜냐면] 최우담 | 충북 단양군 사회복지사
재작년 여름 물난리로 죽을 뻔했다. 그토록 많은 비는 난생처음이었다. 밤새 내린 폭우로 불어난 물이 새벽 여섯시께부터 하천 제방을 넘실대기 시작했다. 2~3m 깊이에 폭도 꽤 넓은 하천이었는데도 말이다. 집 코앞 제방에 물이 찰랑대는 걸 확인하고 ‘이제 우리는 어디로 도망가야 하나.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란 고민에 빠져들었다. 집 앞 하천이 넘치고, 도로는 침수됐으며, 집 뒤 산은 산사태 우려로 대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언제 이 비가 그칠지, 우리 사는 이 지역이 지금 얼마나 고립됐고 위험한지 알아보려 텔레비전을 켜고 핸드폰으로 날씨를 검색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알 수 없었다. 사람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는데 언론에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니 섭섭함을 넘어 심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다행히 오전 10시쯤부터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정오께 비가 그쳤다.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이 휘몰아치던 비는 마을 곳곳을 헤집어놓았다. 마을 공터는 물에 잠겼고, 마을 어귀 하천 하류 제방이 무너져 논과 밭이 물에 잠겼다. 이날 오후가 돼서야 우리 지역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 마을에는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인근에서는 여러명이 죽거나 다쳤다. 산사태가 심하게 난 곳도 있었다. 산사태 난 현장을 보여주고, 이재민을 인터뷰하고, 인명피해 상황을 보여주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정작 가장 위험한 시기에 가장 필요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은 게 다시 떠올랐다. 우린 정말 죽을 뻔했다. 지금도 나는 비가 오면 마을 하천 수위부터 관찰한다. 물이 넘칠까 겁났던 그때 기억 때문이다.
지난주 수도권 수해 상황 역시 재작년 우리 마을을 떠올리게 할 만큼 위험하고 심각했다. 정부는 곧바로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언론은 수도권 피해 상황을 24시간 내내 보도했다. 정치권은 재난상황 지휘 문제로 다툼을 벌이면서도 앞다퉈 복구대책을 내놨다. 폭우와 홍수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피해는 이른 시일 안에 복구돼야 한다. 그런데도 뭔가 소외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관심 격차랄까. 서울 강남 외제차 침수 뉴스를 보노라니 방송들이 우리 지역 수해 때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가 하는 야속한 생각이 절로 났다.
기후위기로 재작년 우리 동네, 올해 서울에서와 같은 집중호우, 기상이변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재난상황을 보도하는 언론, 특히 실시간 중계하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의 재난보도는 재난에 맞닥뜨린 사람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어느 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리는지, 도로 상황은 어떤지, 대피는 어디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밀한 재난경보시스템을 구축하고, 방송은 이를 최대한 실시간으로 해당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등 비수도권 지역에서 폭우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은 아비규환에 빠져 있지만 중앙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비싼 외제차라도 사람 목숨보다 소중하지는 않을 텐데, 또 사람이 많이 사는 곳만 우선순위로 놓을 일은 아닐 텐데. 재난상황 때도 소외된 곳이 있을 수 있음을, 필수적인 재난정보는 어디에 사는 누구나 공평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년 8월 폭우로 마을 어귀 하천 하류 제방이 무너져 논과 밭이 물에 잠겼다. 필자 제공 영상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