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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맞서 싸워온 나를 응원한다 [제12회 비정규 노동수기 공모전 우수상]

등록 2023-02-01 18:46수정 2023-02-02 10:31

2020년 2월5일 서울 중구 직영 초등 돌봄교실에서 돌봄전담사(오른쪽)가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20년 2월5일 서울 중구 직영 초등 돌봄교실에서 돌봄전담사(오른쪽)가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남재영 | 학교 돌봄전담사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특별한 몇이 아니라 평범한 여럿이다. 하찮아 보이지만 더없이 인정받아야 할 사람들로 인해 세상이 돌아간다. ‘시험 쳐서 들어간 것도 아니면서 뭘 그리 요구하는 게 많아?’ 학교 비정규직 처우 개선 파업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무서울 정도로 혐오적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특별한 몇의 자리에 서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현실은 나도, 우리 자녀도 평범한 여럿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소수, 특별히 많이 가진 기득권의 생각을 내면화해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날 선 공격이 아픈 이유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사람만 사람대접을 받는 세상이야말로 잘못된 세상이다.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정당한 대가를 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이 일은 47만원짜리가 아냐

나는 학교 돌봄교실에서 맞벌이 부모나 저소득층 학부모의 자녀 스물두 명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돌보고 가르치는 돌봄전담사다. 15시간 미만 시간제 전담사로 수년째 압축 노동 근무체계 속에서 늘 부족한 시간에 쫓기며 1, 2학년 아이들을 돌봐왔다.

3년 동안 15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자로 시급제 임금을 받았는데 휴일이 많은 어느 해 10월 월급은 47만원 정도였다. 5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이 찍힌 명세서를 받아들고 처음으로 비애감을 느꼈다. 그것은 분노를 넘어선 슬픔이었다.

‘스무 명의 귀한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데…. 이 일은 결코 47만원짜리가 아니야!’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8시간의 근무시간을 주고 누구는 2.8시간의 근무시간을 주는 차별을 더 이상 견디며 일할 수는 없었다. 내가 받는 차별이 내가 돌보는 아이들이 받는 차별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돌보고 가르치는 ‘돌봄’이라는 노동 가치를 폄하하고 돌봄이라는 여성 노동자의 일을 하찮게 여기기에 압축 노동, 공짜 노동, 시간제 땜질 노동을 당연시하는 게 아닌가? 사용자 그들이 당연시하는 폄하와 차별을 나는 더 이상 참고 견디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년을 방과후 강사로 일하다 돌봄 일을 해보겠다고 전직을 한 이후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으로 일만 열심히 한 내가 노조의 문을 두드린 계기였다.

돌봄 질보다 양적 확대만 급급

학교 돌봄은 학부모들의 수요가 매해 높아지고 있고 학부모 만족도가 매우 높으며, 저출산 시대 국가적 정책 사업으로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정작 돌봄교실에서 직접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돌봄전담사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기만 하며 십여 년째 적정 근로 시간조차 확보받지 못하고 있었다.

2019년에서야 15시간 단시간 근무체계는 개선됐지만 돌봄 종사자 근무시간이 각기 4시간, 6시간, 8시간으로 다른 차별적 시스템은 계속되고 있었다. 교육청은 돌봄의 질적 제고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저비용 시스템으로 돌봄의 양적 확대에만 급급해 돌봄교실을 땜질식으로 운영해 오고 있었다.

스물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종이접기, 클레이(찰흙) 활동, 독서 지도, 놀이 지도 등 다양한 돌봄 활동을 진행하고 숙제를 봐주고 아이마다 각기 다른 일정대로 특기·적성 수업에 보내고 간식 먹이고 시간별로 하교시키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면 청소하고 일지 쓰고 계획안 짜서 돌봄 활동을 준비해야 했다.

돌봄 활동에 필요한 재료나, 교재를 검색해서 품의 올려 구입하고 잡다한 행정 업무를 처리해야 했으며 아이들끼리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학부모 상담도 해야 했다. 이 모든 업무를 4시간 안에 다 해내야 하기에 무급 초과근무는 일상이었다. 봉사를 강요하고 무급 근로를 당연시하는 시스템 안에서 수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그 어느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2020년 11월6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열린 초등돌봄전담사 전국파업투쟁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대형 인형을 메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1월6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열린 초등돌봄전담사 전국파업투쟁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대형 인형을 메고 있다. 연합뉴스

10여년 고단한 투쟁…절반의 성공

나는 각 학교 돌봄교실로 전화해 단시간 전담사들과 어렵게 통화를 했고 모바일 단체 대화방으로 초대해 현장의 고충을 나누고 노조 가입을 설득했다. 우리가 받는 차별과 불공정 문제를 공유하며 다 같이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투쟁하면 반드시 우리의 근로 조건이 개선될 것이라며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단시간 돌봄전담사 30여 명의 선생님이 노조에 가입하고 출근 전에 경기도교육청에 모여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외치며 차별적인 근무시스템을 개선하고 전일제를 도입하라고 목놓아 외쳤다. 파업을 앞두고는 아침, 저녁으로 모여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교육청 앞에서 선전전을 했다. 초·중등교사 자격증이나 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아이들을 돌보고 성장시키는 돌봄전담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돌봄의 질적 강화를 위해 근무시간 확대, 전일제 근무체계를 도입하라고 국민신문고에 글도 올리고 대통령께 호소문도 썼다. 국가인권위에 학교 돌봄교실의 차별 문제에 대한 진정서도 제출했다.

수년간 학교 돌봄 노조원들의 파업과 간부들의 단식 농성, 삭발 투쟁, 망루 고공 농성을 하고서야 2019년에 20시간 무기직이 되고 2022년에서야 겨우 한 학교에 한 명 정도의 돌봄전담사가 8시간 전일제 근무체계가 되었다. 10여년 동안의 고단하고 지난한 투쟁으로 절반의 성공을 이룬 셈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8시간 전일제로 근무시간 확대를 그토록 원한 것은 아동 돌봄 시간 외에 별도로 돌봄 활동을 준비하고 행정 업무를 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마침내 8시간 전담사로 발령받아 오전 11시까지 처음 출근한 날, 아이들이 없는 텅 빈 교실에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아이 돌봄 시간 외에 별도로 돌봄 활동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행정 업무를 할 시간이 주어진 것이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오후에 출근하는 나보다 아이들이 먼저 와 돌봄교실 앞에서 기다리다 내가 나타나면 “선생님은 왜 이렇게 늦게 오세요? 지각쟁이 선생님!”이라고 영문도 모른 채,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그동안 근무시간 확대를 위해 투쟁해 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 수천 명의 돌봄전담사들이 모여 울분을 토했던 일, 한겨울 퇴근한 뒤에 세종시까지 운전해 달려가 교육부 청사 앞 얼음판에 앉아 연좌 농성했던 기억, 교육청 협의회에 참가하고 급히 출근하다 계단에서 고꾸라져 발목에 골절사고를 당한 기억까지….

민영화·외주화 좌시하지 않아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해 자녀 수는 줄어도 돌봄의 질과 양은 오히려 더 늘어나게 된다는 분석이 있듯이 돌봄이 필요한 우리 소중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기울여야 하는 돌봄의 질과 양은 실로 엄청나다.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스물두 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돌봄전담사의 업무 강도는 매우 높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업무에 관한 연수나 돌봄 활동을 위한 다양한 교육 콘텐츠 제공, 아동이나 학부모 상담과 관련된 연수 기회는 너무나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저 눈으로만 지켜보는 소극적인 돌봄은 우리 아이들도 학부모도 원하지 않는다. 색종이 접기 하나를 해도 미리 접어 보고 준비를 해야 하고, 동화책 한 권을 읽어 주려 해도 먼저 읽어보고 내용을 파악해야 짜임새 있는 활동이 이루어진다.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가 만족할만한 질 좋은 돌봄이 되려면 모든 학교 돌봄전담사가 전일제 근무체계가 되어야 하고 돌봄교실 법제화를 통해 공적 돌봄 운영 체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 마련돼 근 20년 동안 공적 돌봄으로 자리 잡아 온 학교 돌봄을 개선해 공적 돌봄을 질적으로 강화할 노력 없이 공공 돌봄의 근간을 훼손하고 학교 돌봄을 민영화·외주화하려는 움직임은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보육은 교육이 아니라는 궁색한 핑계로 돌봄교실을 학교 밖으로 내몰아내려 하지만 이미 교육복지가 실현되고 있는 학교를 학부모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돌봄 운영이 지자체로 이관되면 지자체 예산 형편에 따라 돌봄의 질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이고 학교 돌봄 외주화의 피해는 결국 우리 아이들과 돌봄종사자들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더 행복한 교실을

정규 수업이 끝나면 “돌봄 선생님~”하며 즐겁게 돌봄교실로 들어서는 아이들의 해맑은 눈망울들을 보면 행복하다. 그 눈망울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이 일을 계속해오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과 놀 수 있어서 돌봄교실이 너무 재미있다는 아이, 돌봄교실에 오면 숨을 쉬는 거 같다는 아이, 학교에 돌봄교실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아이, 3학년이 되어서도 돌봄교실에 오고 싶다는 아이…. 이 아이들에게 더 행복한 돌봄교실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일하며 연대하며 나의 일터를 더 낫게 만들고 공공 돌봄인 학교 돌봄교실을 꼭 지켜낼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오랜 시간, 차별에 맞서 싸워온 나를 응원한다. 파이팅!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2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한겨레>는 해마다 수상작 일부를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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