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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1호 판결’ 아쉽지만 진일보한 첫걸음

등록 2023-04-12 18:38수정 2023-04-13 02:36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대표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왼쪽부터)과 중대재해전문가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 문은영 변호사가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6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대표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왼쪽부터)과 중대재해전문가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 문은영 변호사가 이번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왜냐면] 임영섭 | 재단법인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미래일터안전보건포럼 공동대표

이달 6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 대한 첫 판결로 하도급 노동자의 사망 사고에 대해 도급을 준 회사 대표에게 책임을 물었다. 지난해 5월 경기 고양시 일산의 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자재를 옮기던 하도급 노동자가 5층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는데, 원도급 회사의 대표가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이행 조치를 하지 않아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 회사 대표가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절차와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기준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고 작업중지, 근로자 대피, 위험요인 제거 등 중대재해 발생이나 급박한 위험에 대한 대응 조치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위반을 인정했다. 이러한 안전보건확보 조치 불이행은 결과적으로 작업을 중지하거나 즉시 추락위험을 제거하지 못한 원인이 됐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논쟁이 됐던 몇 가지 사항에 대해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도급업체의 대표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종사자에 대한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의무 부담자로 판단했다. 법인이나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이나 사업장에서 제3자에게 도급 등을 행한 경우에는 제3자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도 의무 부담자로 판단한 판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둘째, 현장의 안전보건 조치 위반과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한 점이다. 재판부는 안전대가 지급되지 않았고 안전대 부착설비도 설치되지 않았으며 급박한 상황에서 작업중지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사고의 원인으로 봤고, 이는 경영책임자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평가 기준과 비상대응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데서 연유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는 현장의 안전보건조치의 미비에 대해서 경영책임자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아 책임을 묻지 않았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재판의 한계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셋째, 재판부는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해, 최근 사업주 및 도급인에 대해 보다 무거운 사회적·경제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에 관해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그에 따라 이 사건에 적용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도 했다”고 언급, 입법 취지를 명백히 밝히면서 이를 불리한 양형인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도 눈에 띈다. 재판부는 감형인자의 하나로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는 피해자를 비롯한 건설근로자 사이에서 만연해 있던 안전난간의 임의적 철거 등의 관행도 일부 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 다시 말해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을 사고원인의 일부로 보고 형량 결정에 감안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그리스에서 발생한 열차탈선 사고를 놓고서 총리가 ‘인간의 치명적인 실수’라고 역장 탓을 했다가 안전시설 미비 등을 지적하는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사과한 적이 있다. 인간의 실수가 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책임회피의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의 실수를 줄이거나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데 활용해야 한다. 실수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안내하고 교육하고 시설과 장비를 개선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명확성의 원칙, 책임주의 등에 반한다는 비판과 이 법이 갖는 특성상 일정 부분 포괄적일 수밖에 없고 사법적 판단으로 그 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반론이 있었다. 영국은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재판과정에서 ‘적절하고 충분한’ 안전보건 조치가 이뤄졌다는 것을 사업주가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판결로 중대재해처벌법의 법리를 인정하고 구체적 기준 정립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앞으로 입법 취지를 반영한 판결이 쌓여 이 법이 산업재해를 막는 데 실효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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