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가 지난 9일 국회 정문 앞에서 노란봉투법 입법 촉구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김해정 기자
[왜냐면] 이병훈ㅣ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
노란봉투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정부·여당과 재계는 ‘망국적 악법 강행’이라 격한 비난을 쏟아내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반면, 야당들과 노동사회단체는 30여년 걸린 입법인 만큼 즉각 공포·시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운명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달려 있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47억원 손해배상액이 청구된 쌍용차 노동조합을 돕기 위해 많은 시민이 자발적 연대활동으로 전개한 ‘노란봉투 캠페인’에서 비롯했다. 노란봉투 운동의 취지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불법으로 간주돼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 및 가압류로 인한 노조 파괴와 노동자 삶의 파멸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실제 노란봉투 운동을 주도해온 시민단체 손잡고에 따르면, 1990~2023년에 이뤄진 197건의 손배·가압류 사건에서 무려 3160억원이 청구됐으며, 이들 사건의 94.9%가 개별 노동자를 표적으로 삼아 그들의 삶과 가정을 심각하게 파괴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기업이 손배·가압류를 무기 삼아 노조의 무력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2003년 배달호 열사를 비롯해 수십명의 ‘노동 열사’를 낳기도 했다.
기업들의 고용관계 외부화와 디지털 플랫폼의 상업화로 인해 빠르게 늘어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종속적 사업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주자는 것이 노란봉투법의 또 다른 입법 취지다. 파견, 도급, 용역, 하청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중개 등 종속적 사업계약에 매여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 그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진짜 사장님’인 원청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플랫폼 사업자, 중개 에이전시 및 모기업과의 협상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원청기업 대부분이 현행 노동관계법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협상을 거부해 불안정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익을 개선키 위해 불법파업에 나섰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곤 한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가 원청과의 교섭을 이끌어내기 위해 부득불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조합비나 임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손해배상 소송에 빠져들었다.
현행 노동조합법의 맹점을 개선하려는 노란봉투법은 대법원 판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제87호와 제98호) 비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으로 그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재계와 보수언론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될 경우 노조 파업 급증, 노사관계 불안정화, 법치질서 붕괴 등을 초래해 기업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로 귀결하고 결국 나라 경제를 망치고 말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노동쟁의 제한과 불법파업에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용인하는 현행 노조법 체계가 노동기본권을 형해화시킬 뿐 아니라 제도 보호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불안정 노동자들의 극한투쟁과 불법 쟁의행위를 부추겨 산업현장의 법치 질서를 세우기 더 어렵게 만들고 갈등적 노사 관행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원청·플랫폼 대기업들로서는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그동안 ‘균열 일터’(기업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업무를 하청에 떠넘기면서 일터가 조각나고 노동자의 처우가 열악해지는 현상)의 남용으로 얻은 이익의 일부를 나눠야 하는 비용 부담이 발생하겠지만 길게 보면 노사관계의 법외 사각지대를 해소함으로써 상생적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사회적 실익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요즘 대통령의 화두가 민생으로 바뀐 것은 반가운 일이다. 원청·프랜차이즈·플랫폼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종속적 사업자와 같은 노동 약자들의 권리와 안전을 챙겨줄 때 민생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진정성이 인정받을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께 간곡히 당부드린다. 일하는 국민의 민생을 책임지려면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게 아니라, 진짜 해야 할 노동개혁으로 당장 시행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