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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옛날이야기’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제도적 상상력 ‘노란봉투법’

등록 2023-11-22 18:44수정 2023-11-23 02:40

지난 20일 국회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는 전문가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국회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는 전문가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권오성 | 성신여대 교수(노동법)·변호사

단체행동권은 헌법상 기본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기본권을 행사한 근로자가 회사로부터 거액의 손해배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비관해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3년 12월17일 노사정위원회에서 “경영계는 노동조합의 적법한 활동을 존중하고, 위법 쟁의행위에 대해 민사책임을 묻는 경우에도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한다” “정부는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위법행위를 방지하는 동시에 손해배상·가압류의 남용방지 및 제도의 보완에 최대한 노력한다”는 취지의 노사정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쟁의행위에 관한 손해배상 책임 논의는 매번 ‘불법행위를 옹호하자는 것인가?’,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주장’이라는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단체행동권 행사의 결과로 조합원의 개별적인 행위들은 하나의 단일한 쟁의 행위로 모이고, 이에 따라 단일한 쟁의 행위에 흡수된 개별 조합원의 행위는 독자성을 상실한다. 따라서 이렇게 쟁의 행위에 흡수된 조합원의 행위를 다시 ‘개인’의 행위로 환원해 개별 근로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은 단체행동권 보장 취지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선 노동조합은 물론, 노동조합 간부 개인에게도 쟁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가혹한 관행이 있다.

이러한 관행은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파업권의 행사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근로자에게 처벌이 가해져서는 안 된다는 게 국제노동기구의 기본 입장이다. 파업 때 사람이나 재산에 대한 폭력 등 기타 형법 위반이 발생했을 때는 해당 법령에 근거해 처벌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당하지 않은 파업에 대해서도 그에 대한 제재는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당하지 아니한 쟁의행위에 대한 지나친 제재는 정당한 쟁의행위까지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가 노동조합에 대한 모든 손해배상 청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킬 목적의 거액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런 국제기준을 따른다면 손해배상 청구의 목적이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데 있다거나 청구 금액이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킬 정도로 크다면 법원은 기업의 ‘부당한’ 손해배상 청구에 조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1월9일 쟁의행위에 관한 민사책임을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하는 취지의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비록 국제노동기구의 기본 입장에 턱없이 부족한 내용임에도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는 헌법상 단체행동권보다 기업의 재산권을 우위에 두는 ‘지겨운 옛날이야기’에 균열을 내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헌법은 단체행동권을 근로자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이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취지를 고려해 민법과 노동조합법 등 하위 법률을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법원은 거꾸로 민법과 노동조합법이라는 하위 법률의 해석을 통해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제한해 온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는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행위로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는 민법과 노동조합법 등 하위 법률의 문구를 근거로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가둬 두지는 않았는지 법원의 자성을 요구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노란봉투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이 헌법전을 벗어나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기능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생활 헌법으로 기능하게 하는 새로운 ‘제도적 상상력’의 출발점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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