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와 활동가들이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하고 나서 국회로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왜냐면] 방귀희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한 해를 돌아보니 올해 가장 많이 들은 뉴스는 정치인들의 말싸움이다. 정치인들은 싸움을 하다 불리하면 국민이 원한다거나 원치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 국민 가운데 장애인이 있을까? 정치인들이 장애인의 얘기는 전혀 들어주지 않는 것을 보면 그 국민은 장애인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올해 서울시민들은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시위하는 장애인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그분들은 장애인들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 배경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테니 올해가 가기 전에 그 이유를 설명해야겠다. 정치사상가 악셀 호네트는 자신들이 가진, 바꿀 수 없는 특성을 정치적으로 승인받기 위한 운동인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를 이론화했는데, 장애인은 바로 그 정체성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는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특성인데, 정치인들은 그 특성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장애인은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사회권(social rights)을 승인받기 위해 지하철에서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최고의 권리인 사회권은 모든 사회 환경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국회는 사회적 약자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능별 비례대표 제도를 두고 있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20년 발표한 논문에서 장애인 문제 해결에 있어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과 선택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정치 현장에서 장애인의 대표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장애인 정치 세력화를 주장했다.
필자가 올해 발표한 논문 ‘한국 장애인의회정치 문화의 변화와 발전 방향’에서 1996년 15대 국회부터 현재 21대 국회까지 28년 동안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12명 나왔는데,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 수는 항상 전체 국회의원의 1% 수준에도 못 미쳤다는 것을 밝혔다. 올 상반기까지 12명의 장애인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총 법률 건수는 7223건, 총 가결 건수는 540건이었다. 가결율은 7.5%였는데, 그 가운데 장애인 관련 법률 가결율은 5.2%에 불과했다. 물론 장애인 국회의원들이 입법 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삶을 향상시켜 온 것은 분명하다.
28년 동안의 장애인 의회 정치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단체장에서 전문가로, 경증에서 증증 장애로 그리고 복지에서 문화로 변화했다. 그동안은 장애인의 정치 참여가 개척기여서 장애인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에 대해 평가하기보다는 조용한 지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장애인 의회 정치를 무력화시켰다.
한국의 장애인 의회 정치 문화가 현재에 머물지 않고 발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를 철저하게 실시해 정치적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 비례대표가 단순한 약자 구색 맞추기가 아니려면 장애인을 위한 비전과 함께 그 실행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할 역량을 갖춘 장애인을 영입해야 한다. 그래서 이동석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전문성이나 대표성 없이 감동 스토리 중심의 인물을 비례대표로 선출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장애인계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장애인 비례대표로 국회에 가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22대 국회에서 전문성과 대표성을 가진 인물이 정체성의 정치를 하면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가지 않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치가 꼭 필요한 사람은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이지, 기득권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에 눈살을 찌푸릴 것이 아니라 이익 집단들이 피켓을 들고 도심의 주요 거리를 가로막고 자신들의 욕망을 부르짖을 때 시민들은 용감하게 외쳐야 한다. ‘시민의 사회권을 침해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