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대한변협이 징계를 하네 마네 하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새삼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나 방송극 같은 대중과 호흡하는 대중예술 속의 법조인의 모습은 그런 점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영화 속 법조인의 모습이 결코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하지만 법조인이란 존재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느껴지고 있는지를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영화 속의 법조인은 더는 정의를 실현하는 지식인이 아니다. 80년대까지 유지되고 있던, ‘몰인정하고 냉정한 검사’와 ‘착한 범법자의 수호자 변호사’라는 구도도 완전히 깨어졌다. 혹은 부도덕한 정치권력의 하수인 같은 이미지도 사라졌다. 근자의 영화에서 발견되는 법조인은 그저 법 지식을 팔아먹고 사는, 부유하고 권력 있는 직업인일 뿐이다. 법조인에 대한 대중의 환상과 권위는 해체된 세상이 되었다.
법조인들은 조폭 영화에 나오는 검사 인물은 모두 엉터리라고 여기며,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대중들이 마음으로는 법조인과 조폭을 별반 다르지 않게 느끼고 있음을 징후적으로 드러내어 준다. 따지고 보면, 범죄 근처에서 생활하며, 돈과 힘이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법조인과 조폭은 공통점이 있다. 영화 속 세계에서는 둘의 모습이 훨씬 더 닮았다. 법조인이든 조폭이든 그들이 하는 짓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거나 자기 원수 갚으려고 하는 짓이다. 양쪽 모두, 협박, 뇌물수수, 횡령이나 배임 등 검은거래에 능란하다. 범죄와 법의 구조를 잘 알기 때문에 법을 교묘하게 피하거나 이용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상당수의 영화에서 법조인들은 ‘조폭보다도 훨씬 못한 놈’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영화 속의 그들은 조폭보다 덜 인간적이고 덜 솔직하다. 주먹으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것도 아니고, ‘잔머리’와 말로 승부하다가 불리해지면 재빨리 꽁무니를 빼는 ‘쪼잔한’ 캐릭터들로 설정된다. 심지어 법조인 중에서도, 법조인답지 않고 조폭처럼 구는 인물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괜찮은 인물로 그려진다. 조폭처럼 구는 법조인은 그래도 ‘뜨거운 피’를 지니고 있어 불의에 분노하지만, 그렇지 않은 법조인은 ‘법대로 해봐!’를 외치며 교묘히 악행을 저지르는 힘있는 범죄세력을 처단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인간들이다. 심지어 그들의 회유나 협박이 있으면 언제든 꼬리를 내리거나 그들과 결탁한다. 조폭 같은 검사는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튕겨나간다. 대중들이 이런 인물에 공감하는 것은, 민주화되었다는 이 사회에서도 여전히 법과 법조인이 정의로움이나 인간다움을 지키는 데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협의 김용철 변호사 징계 논의를 보니, 대중들의 이런 태도가 그리 크게 틀리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의 관계는 의뢰인과 변호사(의뢰를 거절할 수도 있는)의 관계가 아니라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관계였다는 것을, 돈 많은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별별 논리를 다 끌어대는 똑똑한 변호사 나리들께서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영화에서처럼 돈과 힘있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법적 지식을 동원하여 엉성한 논리라도 만들어야 먹고사는 존재들임을 스스로 입증하려는 것일까?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