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희│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동료 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취임식 때 사용한 “동료 시민”이란 용어가 공화주의를 의미할까? 나는 좀 의아했지만, 많은 언론이 이 둘을 연결하여 보도했다. 공화주의를 포함한 여러 정치이론의 특성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패거리 카르텔’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통해서도 파악된다. 예를 들어, 이를 연일 공격하는 대통령은 실제 그렇든 아니든 시장에 방해된다고 자신이 판단하는 모든 이익집단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자로 보인다.
전통적 공화주의보다 진일보한 시민 공화주의 이론에 따르면, 정부는 숙의 민주주의를 통해 공공선(common good)에 맞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이익집단도 공익을 위한 지속적인 숙의 과정에 도움이 되기에 그 필요성을 일부 인정하지만, 정부를 그런 패거리의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권력 분산과 개방된 정책결정 과정을 더 중시한다. 이는 이익집단을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이고 공공의 이익을 사적 이해와 가치의 총합으로 정의하는 다원주의와 다르다. 나는 공화주의의 순진한 가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익집단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 격차를 상대적으로 간과하는 다원주의의 단순함보다는 낫다.
하지만 한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의 활동을 시민 공화주의로 보긴 어렵다. 첫째, 시민 공화주의 정당을 추구한다면 비대위원장을 수락하며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울 겁니다”라고 해서는 안 됐다. 시민 공화주의는 그 배경이나 가치가 주류 사회와 다른 시민을 배제하거나 강압하지 않는 민주적 정부를 약속한다. 대신 다른 문화적 배경과 가치를 가진 사람과 공감하도록 독려하며, 숙의를 통해 서로 다른 선호를 변환시켜 공유될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아나간다. 과반 의석을 가진 국민의 대표와 무조건 싸운다? 과연 어떤 공공선을 위하여?
둘째, 시민 공화주의의 이상에 충실한 정당이라면, 대통령에게 ‘50억 클럽’과 김건희, 두 특검법을 거부하라고 건의할 수 없다. 시민 공화주의는, 최고권력자의 사적 이해에 기반한 부정확한 공공선 개념을 국민에게 제시할 수도 있는, 상당한 재량권을 정부에 줌으로써 패거리 정치보다도 못한 권력 남용을 불러올 수 있다. 시민 공화주의 이론은 시민 스스로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사상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바로 그 시민이 공공선을 추구하려는 의지를 불신하는 모순을 내재한다. 시민 공화주의는 권력자와 그의 네트워크에 대한 강력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이를 해소하고자 노력해왔다.
셋째, 시민 공화주의적 정당이라면, 야당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정치테러를 공공선에 반하는 명백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테러의 총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했다. 경찰의 미진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분명한 사실은 이토록 심각한 혐오를 키운 정치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정의는 정치적 지배로부터의 자유이다. 정치테러는 공포를 통해 상대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의 가장 저열한 표현이다.
다행히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국민의힘은 아직 공화주의적 신념을 증명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이태원참사특별법 수용을 대통령실에 건의하면 된다. 시민 공화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다수자 집단과 기득권의 통치를 당연시하지 않고 소수자와 기존 정치로부터 배제된 집단의 이해를 법 제도에 반영하려 한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에게 이 법조차 허용될 수 없는가? 목에 날카로운 칼을 흉포하게 찔러 넣는 물리적인 행위만이 정치테러가 아니다. 비유하자면, 특별법 거부는 슬픔에 잠긴 유가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또 다른 정치테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