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비판의 공세를 올리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명분을 쌓고 있다.
대통령실은 1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관련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관해 공식적으로는 정해진 바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여러 대통령실 고위, 핵심 관계자들은 한겨레에 “아직 국회에서 정부로 법이 이송되지도 않았다. 숙고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11명으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꾸려 4월10일 총선 뒤부터 활동을 벌이게 돼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 내부 기류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윤 대통령이 아홉번째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쪽이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겨레에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기류가 강하다. 법안의 법리적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정무적인 부분에서 여러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실정을 정략적으로 부각하려, 여야 합의 없이 법을 통과시켰다고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관여 의혹 특검법과 대장동 50억클럽 특검법 등 쌍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지 나흘 만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에도 불쾌감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대통령실은 특조위에 과거 불송치, 수사 중지된 사건에 관해서 조사·재판기록 제출 요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동행 명령과 수사기관 고발권 등을 부여한 특별법 내용도 과하다고 판단한다. 특조위원 11명 가운데 여당이 4명, 야당이 4명, 국회의장이 3명을 추천하기로 한 것도 불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가 설 연휴를 앞두고 이뤄질 경우 여론의 비판은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한 대통령실 참모는 “거부권을 행사하면 시점이 설 연휴 전이라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 내부에서도 계속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 원안에서 특조위의 특별검사 요구권과 유가족의 특조위원 추천권을 들어내고, 활동 기간도 석달 줄인 수정안을 통과시켜 거부권 행사 빌미를 줄인 점도 부담거리다.
여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비판하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부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특조위는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이태원 특검”이라며 “이를 용납하는 것은 헌법 유린에 동조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날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야당 주도의 특조위가 사실상 검찰 수준의 조사를 1년 반 동안 한다면 국론이 분열될 것”이라고 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