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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우리들의 바보’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등록 2009-05-29 19:40

‘우리들의 바보’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그림 고경일
‘우리들의 바보’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그림 고경일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당신 떠난 빈 자리 우리가 채우렵니다

아름다운 바보여!
당신은 소통의 부재 화두로 남기고 홀연히 자연의 품에 안겼습니다.
당신은 봄 햇살로 언제나 곁에 머물렀는데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당신 떠난 빈 자리
국화 한 송이, 담배 한 개비, 술 한 잔
그리고 흐르는 눈물 당신 영정에 바치며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 가슴에 새기고
촛불로 밝혀 차곡차곡 이루렵니다.
하지만 그 길 멀고 험함을 압니다.
햇살을 가린다고 어둠이 깃드는 것 아닌데
이 순간에도 여전히 어리석은 착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떠나는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하게
차벽으로 차벽으로 줄지어 가로막고 있는지

촛불은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촛불은 소통을 향한 염원이었습니다.
하여
이제 당신 떠난 빈 자리에 또다시 촛불 하나 밝힙니다.
당신이 뿌린 봄 햇살
우리도 살고 싶어 이렇게 먹먹한 가슴
흔들어 깨웁니다.

정상훈/서울 양천구 신정7동



부엉이 바위

너는 보았니
갓 동튼 새벽 어스름
뿌옇게 쌓인 안개를 헤치고
누가 너에게 다가오는지

생애 이 편 저 편 너를 마음에 품고
물러서지도 비켜가지도 않고
외길을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농투성이 투박한 모습으로
뚜벅 뚜벅 너에게 다가갔는지

굶어 죽더라도 씨앗을 품는다는 농투성이
그 씨앗이 백 만배의 결실로 맺히는
내일을 기약하기에

가슴에 한 가득
피어나지 못한 씨앗을 안고
속이 너무나 아파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서
잠시 후 만남을 기약하는
지옥 같은 마음으로
너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이를
너는 보았니

담배 한 개피마저
여의치 않았던 세상
너의 기슭에 또 하나의
오월 넋으로
내려앉은
그를 너는 보았니

어둠을 횃불 같은 눈으로 밝히는
밤의 현자 부엉이
온 몸에 병원균을 묻히고 돌아치는
쥐 나부랭이들을 단번에 내치는
종결자 부엉이가 깃든다는
너는
그날 무엇을 보았니

유병천/경기 의정부시 금오동


내 오랜 사랑

오월, 그 서러운 계절
아직 눈감지 못하는 고혼들의 비가 (悲歌)
산하에 사무치고
남아있는 여린 곡조만이
두견화 따라 피고 지는데

내 오래된 사랑
서러움도 목말라 내려 놓고
분노마저 힘겨워 질 때
한 송이 미소로 나타나
한 줄기 눈물로 나타나
노래가 되어 곡조가 되고
사랑이 되어
다시 눈물이 되고

한 길 한 길
한 걸음 한 걸음
울고 노래하며
사랑하여 걸어간 길
오월의 남도
끝없는 황토의 땅

죽어야만 사는 생명
모진 역사의 척박함
눈물로는 해갈 안되고
노래로도 열리지 않는
절망의 강산
통한의 산하

몸이 죽어 흙이 되고
영혼마저 거름 되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비로소 얻은 생명
다시 시작되는 노래

오월, 그 찬란한 계절
죽어있던 모든 것들의 부활
다시 시작되는 노래
버리고서 얻은
생명의 노래

온전히 내려 놓고
비로소 얻은 자유
다시 시작되는 생명
내 오랜 사랑
내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

김홍열/경기 고양시 마두동


그분을 생각하며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분을 생각한다.

그분의 죽음은
그분을 둘러싸고 행해졌던 모든 농간들을
추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분의 죽음은
그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모든 것들이
한 판의 쇼였음을
명백하게 드러내보였다.

그분의 죽음으로 하여 우리들은 모두
추문의 당사자가 되어버렸고,
잘 만들어진 쇼의 귀 얇은 관객이었음을
뼈아프게 깨닫게 되었다.

그 죽음이 아니었다면
그 모든 것들이 쇼였음을
어떻게 밝힐 수 있었을 것인가.

그 죽음이 아니었다면
해일처럼 다가왔던 능욕들과
그보다 더 크고 길었을 치욕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분이 스스로를 버리심으로써
그분이 지키고자 했던 것을 지키고 가신 지
며칠 지난 아침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분의 죽음을 또 생각한다.

그분의 마지막 아침에
담배 한 대가 없었음을
못내 아쉬워한다.

신현주/서울 송파구 잠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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