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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안철수 현상과 새로운 정치의 조건 / 정대화

등록 2012-01-25 19:34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정권교체이다
누가 이 역사적 과제를 담당할까?
정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력 정치가들의 이름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이 시기를 정치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인들이 백번 거론되는 것보다 ‘안철수’ 이름 석 자 거론되는 것이 훨씬 파괴적이다. 비정치인 안철수 한 명이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 둘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하다. 우리 시대가 처한 상황이 좁은 여의도 정치나 정치인들만의 시각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역사적 전환의 국면이라는 반증이다. 역사적 시각이 필요하고 혁명적 전환의 관점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하니, 이 계절은 정치 이상의 것이 요구되는 계절이며 정치인들에게는 자칫 시련의 계절이 될 수도 있다.

안철수 현상에서 중요한 것은 안철수가 아니라 안철수를 세상 속으로 불러내는 국민들의 갈망이다. 안철수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안철수가 정치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대선후보로 적합한 인물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중요하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갈망이 있고 누적된 갈망이 안철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안철수는 ‘정도령’이다. 누가 정도령을 아는가? 아무도 모르고 있고 알 필요조차 없다. 필요한 것은 정도령에 대한 갈망이지 정도령의 실체가 아닌 것이다.

정치가 억압받던 시절이 있었다. 총칼이 정치를 대신하던 시절에 국민들은 정치가들을 기다렸다. 오랜 고통 끝에 정치가들이 세상에 다시 등장했고 우리는 그것을 민주화라고 불렀다. 총칼은 사라지고 정치가들이 군인을 대체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에 다시금 절망하고 있다. 이유 없이 매맞는 것도 두렵지만 살림살이가 고단한 것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단한 삶이 장기화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불만은 분노로 바뀌고 있다. 총칼이 지배했던 시절은 잊었고 총칼 따위는 아무 문제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다.

1997년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부정했다. 그리고 10년간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2007년 국민들은 민주당을 부정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한나라당을 다시 이었다. 지금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다시 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민주당을 기다리는 것일까? 여기에 역사적 전환의 ‘시크릿 코드’가 있다. 통합 문제로 홍역을 치른 민주통합당이 정도령일까? 통합의 안축과 바깥축은 참여정부 집권 시절과 2007년 대선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일패도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가? 막연한 정권교체론 이상의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침체와 분열로 가고 있다. 어떤 리모델링을 하든 한나라당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의 운명이자 한계 때문이다. 민주당은 깨지지 않는 난공불락의 성채가 문제이다. 이 성채가 몸은 야당이지만 마음은 집권세력인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더구나 시민사회 역시 제 길을 찾지 못하고 또 다른 기득권 세력에 의탁하여 새로움을 잃어가고 있다. 시민사회가 역사적 전환의 의미를 무겁게 보지 못하고 스스로의 역사적 사명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안철수이고 시민사회가 새로운 정치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중대한 역사적 전환의 시기가 이기심과 탐욕의 마법에 걸린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의 계절로 전락하여 무의미한 정권교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여기서 싹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정권교체이다. ‘새로운’ 정권교체는 정권교체를 통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 역사적 과제를 누가 담당해야 할까?

40년대의 친일파, 60년대의 군부, 80년대의 재벌을 넘어 이제 시민사회가 그 역사적 대의를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누가 시민사회인지, 시민사회의 대의가 무엇인지, 현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묻고 찾아야 할 것이다. 역사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 답해주는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의 대오각성과 분발을 기대한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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