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빙 승부라는 예상과 다르게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싱겁게’라고 말한 것은 개표 과정에서 일찌감치 ‘박근혜 후보 당선 유력’이 티브이 자막에 뜬 이래 한 번도 엎치락뒤치락하지 않은 채 108만여표 차로 결과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은 51.6%다. 17대 대선 63.0%에 비해 12.8%포인트나 높은 투표율 75.8%인데도 과반을 넘어선 역대 최초의 득표로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한국 최초의 부녀 대통령, 여성 대통령, 미혼 대통령 등 한국 정치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일단 박근혜 당선인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은 ‘참 이상한 나라’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어선 안 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음에도 대통령이 되어서다. 가령 박근혜 후보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50~60대의 높은 투표율과 압도적 지지로 분석되었다.
50대인 필자로선 우선 그것이 이상하다. 예컨대 “50대들 ‘내 자식의 미래 걱정돼서, 내 자식과 다른 선택했다”(<조선일보> 12월21일치)를 들 수 있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뜻이 모아져야 일반적이고 상식적 아닌가?
거기서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게 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다. 파급력이 엄청난 티브이 토론에서 이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나왔다”고 말하는 등 공격적 태도로 일관했다. 50~60대 보수표가 결집한 주요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는 “5060세대 역시 현실에 불만이 있지만, 그보단 불안감이 더 큰 세대”라며 “경제와 북한 문제 등에서 상대적으로 덜 불안해 보이는 쪽에 투표한 것”(앞의 조선일보)이라고 진단한다. 이 역시 50대인 필자로선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진단이다.
북한 문제가 중요하지만 그것이 위기니 불안감으로 다가온 것은 냉전시대의 대결의식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박 당선인의 대북관으로는 천안함 피폭이라든가 연평도 포격 같은 북한의 국지적 도발이 계속될 개연성이 높다. 50~60대의 박근혜 후보 지지는 그런 현상을 이어 가라는 투표인 셈이어서 이상한 것이다.
경제 문제만 해도 그렇다. 5년 전 경제 전문가라는 이명박 후보를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시켰지만, 지금은 어떤가?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보다 경제가 더 좋지 않다고 한다. ‘민생대통령’ 어쩌고 하는데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미혼의 박 당선인은 가정을 이루지 않았다. 장바구니 물가를 겪어보지 못했다. 커 나가는 자식들로 인해 허리 휘는 교육비 따위를 알 리 없다.
오히려 저 ‘유신’으로 상징되는 독재자 박정희의 딸은 아무런 제약도 아니다. 이것 역시 박 당선인이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종국엔 ‘아버지를 밟고 가야 하는’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지만,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어선 안 될 주된 이유는 이미 말했듯 따로 있는 것이다.
50~60대는 소위 ‘박통’ 시절을 겪은 세대다. 가난한 투사가 ‘배부른 돼지’보다 더 절실했던 시절을 겪어온 그들이 자식을 위해 모든 걸 30년쯤 전으로 되돌린 이명박 정부의 공동 책임자이거나 그 연장선에 있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다니! 그들과 같이 50대인 필자로선 그 ‘무지’가 놀랍고도 짠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선거는 끝났다. 박 당선인이 내건 슬로건대로 ‘준비된 대통령’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게 되었다. 이제 문재인 후보를 찍은 48%, 1469만2632명은 슬퍼하고 답답하다며 한숨만 내쉴 게 아니다.
참 이상한 나라이지만, 어떻게 통합하고 상생도 하는지 지켜보자. 말할 나위 없이 참 이상한 나라를 만든 주역이나 마찬가지인 민주당 등 야권이 어떻게 환골탈태하는지도 두 눈 부릅뜬 채 살펴보자.
장세진 전북 군산여상 교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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