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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이런! 가로세로퍼즐을 던져 주고는 풀지 말라고? / 구본기

등록 2014-05-08 19:10수정 2014-05-09 14:43

요즘 세월호 침몰사건에 관한 음모론이 기승이다. 음모론은 주로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퍼져나간다. <루머사회>의 저자 ‘니콜라스 디폰조’는 에스엔에스 따위를 ‘자판기’라고 부른다. 은유의 까닭은 이러하다. 자판기 앞에서 어느 직원 둘이 “아무래도 우리 부장 과장이랑 바람난 거 같지 않아?”라고 소곤대면, 그것이 어느새 직장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자판기는 곧 루머가 만들어지고 퍼져나가는 일종의 루머 공장이다.

음모론이 생산되고 전파되는 까닭이야 무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중에 가장 관심을 갖고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음모론이 많은 경우 불신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제시되는 정보가 자세하고 명확하며, 출처가 신뢰 가능해 빈틈이 없다면, 음모론은 애초에 그 싹이 잘 피어나지 않는다. 가령 내가 주민등록증과 지문, 디엔에이 정보를 바탕으로 내가 구본기임을 주장한다면, 음모론은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장막 뒤에 숨은 채 실루엣과 목소리만으로 “내가 구본기다”라고 주장한다면, 음모론은 30초 안에 100개 이상이 탄생한다.

사람은 본래 어떤 사건에 대한 빈틈을 참을 수 없어한다. 미지의 그것이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빈틈을 채워 넣어야 마음이 놓인다. 이것이 자연과학이 발전하게 된 원리이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이유를 빈칸으로 둘 수 없었던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내지 않았던가.

빈틈 채워 넣기가 수시로 이루어지는 분야가 바로 주식시장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주가의 움직임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명하려 한다. “심리적 저항선을 이기지 못하고…”, “외국인의 매도 공세 때문에…”,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소식에…” 그런데 주가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사항들은 사람의 인지능력을 벗어날 만큼이나 많다. 즉, 너무 엉뚱한 것만 아니라면,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그럴듯한 설명이 된다. 그래 맞다. 애널리스트들의 설명은 결국에 하나 마나 한 잡음이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감히 설명을 하지 아니하고 하루를 보낼 수가 없다. 사람들은 빈틈을 두려워하니까. 그래서 다만 떠든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가가…”.

어쨌든 빈틈 채워 넣기가 음모론을 탄생시킨다. 결과로, “음모론에는 빈틈이 없다”는 코미디가 완성된다. (와우!)

그렇다면 이 빈틈없는 코미디는 왜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것일까? 그것이 ‘믿고 싶을 만큼 흥미롭기(재미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음모론들의 장르를 따져보자. 보통은 반전 스릴러이다. 규모 또한 만만치 않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 저리 가라!”이다. 이렇게 멋진 음모론을 어찌 그냥 둘 수 있겠는가! 무조건 퍼다 날라야지… 한편으로 우리는 생각한다. ‘이거 진짜면 대박!’

음모론은 흡사 신문 귀퉁이에 실린 ‘가로세로 낱말퍼즐’을 연상시킨다. 어떤 사건, 혹은 누군가가 빈칸이 가득한 수수께끼를 ‘툭!’ 하고 던져놓으면, 우리는 최대한의 추론력을 발휘하여 결국에 완성해내고 만다. 이런 식의 지적 유희가 바로 음모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닐까?

최근 떠도는 음모론들은 생성과 흥행의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정부와 언론이 제시하는 증거에 빈틈이 많을뿐더러,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신뢰마저 잃었다. 에스엔에스를 통해 유포되는 루머들은 어찌나 또 창의적인가! 가끔 읽다 보면 ‘우리나라 네티즌 중에는 정말로 천재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정부가 세월호 침몰 관련 유언비어를 단속하겠다며 네티즌들에게 겁을 주었다. 이런! 가로세로퍼즐을 던져 주고는 풀지 말라고 하는 격이다.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고했다고 한다. “결코 네 앞에 놓인 상자를 열지 말라.” 하지만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상자를 열었다고 한다. 결과로 지금의 세상에 질투, 원한, 복수심 같은 악(惡)이 존재하게 되었다나? 분명 인간의 호기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하는 신화일 테다. (그러고 보니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뱀의 정체 역시 호기심이다.)

궁금하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우리네의 젊은 네티즌들은, 과연 세월호 침몰이라는 수수께끼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을까?

구본기 구본기재정안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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