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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세월호 1년, 독자들의 시

등록 2015-04-13 22:51수정 2015-04-14 09:02

[세월호 1년]
동백꽃처럼
박종호 전남 진도군 의신면

어머니
이제 손을 놓아주세요
어머니
날 낳으시고
눈 나리는 날에도
봄비 나리는 날에도
다리 끝에서 손끝까지
기다림을 쥐어짜
온 가슴으로 피어낸 자식
그 가슴 졸이며
날 키워 오신 어머니
이제 손을 놓아주세요
남쪽 바다가
아무리 멀어도
천리 길도 한달음 걸어
찾아오신 어머니
그러나 이제
손을 놓아주세요
그토록 적막한 시선들
어머니를 아프게 했던
회한들처럼 스며드는
바닷물에
어머니 절망까지도 기울어가던
4월16일 아침
손전화기가 쓸려가고
아무런 방송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진공의 선실에서
우리는 인어가 아닌
피지 못한 여린 꽃으로
부유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의 안전한 손을
기다렸습니다
안녕 친구들아
어머니 사랑했어요
팽목항 바다에
미칠듯 닿아 쓰러지며
땅을 치며 허공에
내 이름자를 쥐어잡던
어머니 그 손을
이제 놓아주세요
이 세상
어머니 품은 언제나
꿀과 젖이 흐르는 낙원
저는 늘 소풍날이었는데요
어머니
뒤를 보세요
어머니의 손을 기다리는 사람들
어머니 우리 잊지 않으려
무릎 닳고서 온 어른들의 손을
잡아주세요
차마 잊었던 사람들에게도
손을 내밀어주세요
밤이면 몰래 내 이름을
부르는 물결들
팽목항 뒤산에 늦게 핀
동백꽃처럼
그 붉은 마음만 주세요
어머니.

약속하자 -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부쳐
김희정 시인

아무리 돈에 미친 세상이라도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목숨값 받아 좋다는 부모 있을까
대한민국에는 그렇게 믿는
정부가 있다
내 새끼가
왜, 차가운 물속에 누웠는지 모르는데
진상규명은 눈감은 채
이제 지겹다고 그만 하자고 한다
관혼상제冠婚喪祭의 도리도 모르는
집단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새끼가 죽어 애가 끊고 억장이 무너지고
매일 눈물 마를 날 없는데
그 가슴에 대못을 박는 사람들이 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새끼들이 아른거려
죽음보다 깊은 늪에 빠져 있는 엄마, 아빠들
짓밟고 목을 조르는 저 권력은
무엇을 먹고 자란 괴물일까
금요일이 되어도
끝내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앞에
죄인이 되어 상복을 입었는데
화사한 옷을 입고
패션쇼를 방불케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어린 생명들이 마지막 순간에도
손톱이 붉게 물들 때까지 삶을 붙잡으려 했는데
외면한 정부가
당신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면
믿겠는가
진실을 안고 침몰한 배를
돈 때문에 인양하는 것이 무리라고 떠드는
앵무새를 보라
저 영혼 없는 앵무새를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오늘, 너희들 죽음 앞에서 고백한다
남의 불행이라고 남의 슬픔이라고
먼 이웃 일이라고 말했던
나를 반성한다
입만 열면 거짓말에
약속은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애들아, 이제 남은 일은 산자의 몫이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년이 가도 무너지지 않는
기억의 벽을 세울 것이다
너희들 교실에
그리움의 나무를 심을 것이다
너희들이 건너지 못한 바다에
기다림의 나무도 심을 것이다
세상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져있는
절망의 나무를 베어내고
희망의 나무 한 그루씩 마음에 심을 것이다
다시 봄이 오면 그 나무에서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바람이 쉬었다 갈 것이다
애들아, 그날이 오면 다시 수학여행을 떠나렴
친구들과 3박4일 아름다운 추억 만들고
금요일엔 돌아오렴*
금요일엔 꼭 집으로 돌아오렴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꼭 돌아오렴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물 책 제목

어떤 기억
김초인화 대필작가

돌고 돌아야 할 길이
까마득한데
예기치 못한 뜻밖의 이별이다

기대와 설렘으로
배불뚝이 형형색색의 배낭 줄세우고
사월의 순풍 맞으며
남쪽 바다로 꽃구경 간 아이들은
이국의 꽃소식 한 장 전해 듣기도 전에
그대로 꽃이 되고 돌이 되고
바람이 되어
하루를 억만년의 무게로 외줄 타는
가족들 품으로. 아직,
귀향 중이다
잿빛 미소 한 줌, 아스라이 머금은 채

강 건너 구경꾼처럼
앉아서 지켜본 객들은
이제 막 영글어
풋풋한 향내 스미어돌던 여린 꽃들이
무참히 꺾이는 줄도 모르고
평소처럼 음험하고 태평스런
농이나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만 서둘렀더라면…

한때는
인과없는 세상사에
벼락같이 공분하여
잊지 않을 것이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애틋해했건만
시간 흐르니
기억은 기억 속에 방치해두고
모이고 모인 눈물, 꽃비 되어 흩날리는
차디찬 그 바닷가의 스산한 바람마저
모로 서서 외면하려 든다

우리는 또 이렇게 찬란한 오늘을 산다
어떤 기억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간다

잘라낼 금요일이라면…
김천석 익산무지개아동센터 대표

뱃고동 소리
함성으로 들리던 항만

손 흔들며 떠나던 날
금요일이면 돌아오리라던 너를
아직 날이 이른 듯하여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이젠 욕도 가눌 길 없는
허공이다

때때로 나에게 반항을 하던…
그 애간장의 그리움으로 돌아오렴
공불 못해도 싸움질에
아빠와 엄마의 형상이 사라진 분노.
용서할께
용서할께

이제 4월이다
아픔이어도
눈물이어도 좋다

꿈에 그린 눈물이라 생각할께

금요일이면
금요일이면
지난 꿈을 잘라낼
금요일이라면…

2014 - 0416
박형진 농민시인

낯선 당신과 내가 먼 옛날의 어느 봄날
두 눈과 눈이 마주쳐 흔들리면서
사랑이 시작됐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지금 저 길가의 코스모스가 긴 목을 흔들어
가을의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바람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리라

호랑나비 흰나비가 함께 춤을 추어서
종다리 소리 높여 우지짖었고
종다리 소리 높이 우지짖어서
참매의 날개 두둥실 떠올려졌다가, 순간
침묵을 가르는 회오리 바람소리!
수천수만의 나무를 흔들어 검은 잠에서
깨웠다
세상의 푸르름을 만들었다

사랑이여, 사람이여
지금 이 자리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흔들리지 않는다면
아 - 우리가 서로 어깨 겯고 몸부림쳐
흔들리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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