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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비역사적인 것에서 발굴하는 역사적 진실 / 김상범

등록 2015-11-04 18:45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정치권과 여론이 뜨겁다. 학생들에게 획일화된 역사를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지만, 우리가 맞서야 하는 것은 이러한 ‘무식한 폭력’만이 아니다. 우리는 좌파와 우파의 논쟁에서 역사에 대한 공통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역사를 자기동일성을 확고히 하고 자신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둘 모두 어떤 해석의 틀을 역사에 투영하여 사건을 이러한 해석의 틀에 끼워 맞춘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만 우파는 이것을 공공연히 부정하며 좌파는 이러한 틀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리는 현재의 역사적 담론들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어떤 것에 존재하지 않을까? 그동안 역사의 체로 걸러지지 않았던, 역사적 해석에 저항하는 ‘비역사적인 것’ ‘비시대적인 것’이야말로 사실은 역사의 가능조건을 이루고 있던 것이 아닐까? 사실 역사에 통일적인 해석체계를 부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즉 ‘역사에 저항하는’ 사건들을 발굴하는 일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역사학을 풍요롭게 만들고 상투화된 역사 해석을 극복하는 것일 수 있다.

역사학은 단순한 상식의 재인식이 아니라, 텍스트의 지층과 기억의 지층과 실제 흙더미 지층을 탐사하여 기존 역사학에 의해 발굴되지 않은 사건들, 그러나 실제로는 역사적 현실을 구성하는 사건들과 마주침으로써, 새로운 의미체계를 생성하고 상식을 전복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건’들과 마주치기 위해서는 기존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온 텍스트들, 인물들, 사건들에도 눈길을 돌려야 하고 ‘역사적인’ 사건, 인물, 텍스트에만 집착하는 습관을 버려야만 한다.

오늘날 좌파와 우파의 역사 논쟁은 대부분 ‘역사적인’ 사건, 인물, 사물, 텍스트를 놓고 자신들의 확고한 의미체계를 투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오히려 역사를 자신의 해석의 틀로 박제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와 역사학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역사적인 것’의 권위를 의문에 부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중요한 것/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할하는 기존의 의미체계와 가치체계를 전복하는, 그래서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해석의 틀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복은 상상과 망상으로 자기 마음대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역사가는 ‘비역사적인’ ‘하찮은’ 사건, 인물, 사물, 텍스트들과 마주쳐 ‘진리’가 생성되는 데 있어 최대한 객체의 지위에 머물러야 한다. 이러한 진리는 사건, 인물, 사물, 텍스트가 말하는 진리이지, 역사가에 의해 주관적으로 구성된 진리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내가 말하는 ‘역사적인 것’을 넘어서는 ‘역사적인 진리’의 추구는 자신의 해석의 틀대로 망상하는 음모론이나 광신적 민족주의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역사적 진리는 그러나 총체적 진리일 수 없으며, 다른 진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는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고 제한된 정보만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본질적 조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러한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역사가만이 독단론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새로운 역사적 진리를 생성해낼 수 있다.

이와 같이 텍스트의 지층과 기억의 지층, 그리고 실제의 흙더미 지층 속에 숨겨진 역사적 진리를 발굴해내는 일은, 절대적이고 총체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우파적인 입장과 주관적인 해석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좌파적인 입장을 모두 극복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역사적인 것’과 ‘비역사적인 것’의 변증법을 통해 새로운 진리를 생성해냄으로써 역사학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김상범 포항공과대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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