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김원영
변호사·장애학연구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자주 “국가의 품격”을 강조했다. 2008년 광복절 기념사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제역량에 부합하는 국가이미지와 품격'을 갖춰야 함을 역설했고, 국가브랜드위원회도 설치했다. 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임기 말인 2012년 <신뢰받고 품격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정책보고서도 발간했다. 당시 여당 국회의원이었던 나경원 의원은 대표적인 품격 전도사였다. 토론 프로그램은 물론 서울대에서 개최된 강연회에서도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면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품격 있는 문화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말 ‘품격’은 한 사람의 내면적 가치나 진정한 자기됨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지만 사람이나 물건의 외형(형식)이 주변 환경과 형편에 부합할 때의 가치를 나타내기도 한다. 사전적으로도 품격(品格)을 이루는 한자어 격(格)은 “주변 형편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를 갖춘 물건이나 사람의 모양새를 뜻한다. 그래서 품격은 아파트나 자동차, 값비싼 정장 등 상품의 가치를 표현하는 말로도 자주 사용된다. “당신의 품격을 높여주는 슈트패션”, “품격 있는 자동차” 등과 같이 한 사람의 외적 면모를 표현해준다고 믿는 상품광고에 품격이 자주 등장한다.(‘존엄'은 그렇지 않다. “당신의 존엄을 보장해주는 시계” 같은 말은 쓰이지 않는다.)
이미지와 브랜드, 법질서로 대표되던 이명박 정부의 ‘품격주의’는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더욱 발전하여 극단적인 의전과 이미지의 시대를 열었다. 대통령은 메르스가 창궐하자 “살려야 한다”는 A4 용지가 붙은 책상 앞에서 전화 받는 사진부터 찍었다. 휴가철이 되면 백사장에 나뭇가지를 들고 우아하게 글씨를 쓰는 대통령의 모습도 봐야 했다. 당시 국무총리의 별명은 모두 알다시피 ‘의전왕’이었다. 노인복지관은 노인들을 계단으로 보낸 채 총리의 의전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비웠다.
꽤 오랜 기간 이미지, 브랜드, 품격에 국가권력은 지나치게 집착해왔지만 국민들은 달랐다. 국가 이미지 향상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던 올림픽에서조차 이제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이미지나 브랜드에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안경선배’와 ‘영미’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각자의 꿈을 이뤄내는 모습에 더 열광했다. 일본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고다이라 나오는 이상화 선수를 이겼지만 우리는 고다이라에게 분노하기보다 두 사람의 우정과 감동적인 삶의 서사에 더 주목했다. 최민정 선수의 아웃코스 질주는 대한민국 체육의 저력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고된 훈련을 통해 달성한 한 인간의 탁월함 때문에 감동적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국가의 품격보다 구체적인 개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더 크게 감격했다.
법질서와 국가 이미지를 강조하던 품격주의 시대는 예상보다 빨리 저물고 있다. 이 시대의 상징적 인물들이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한명 한명 언론에 등장하고, ‘격 떨어지는’ 대우를 받는 점은 역설적이다.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에 국가의 품격이 훼손될까 우려하지는 않는다. 헌법은 국가의 품격이 아니라 개인의 존엄을 최고 원리로 삼는다.
3월9일 평창 패럴림픽도 시작된다. 품격의 시대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브랜드의 오점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품격주의가 물러난 자리에서 관객은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의 경기 모습과 각자의 이야기에 녹아든 재미와 감동을 더 잘 느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