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남북한의 마음을 연구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내면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며 의식과 몸을 장악하는 무형의 ‘마음’에 닿아보려 하는 것이다. 경험적 수치와 정교한 모델로 설명력을 고도화해온 주류 사회과학에는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설명될 수 없는 상황이 역사 변화를 추동해왔다는 것을 상기해봤을 때 사람을 움직이며 세상을 바꾸는 힘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의 심연에서 시작되어 엄청난 파괴력으로 가시화되어왔다.
버릇은 숨길 수 없는지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며 다시금 남북 지도자의 ‘마음’을 가늠해보려 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 상황의 이면에는 분명 지도자의 마음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거기에 남-북-미 간 협상이 교착상태에 봉착할 때마다 등장하는 ‘신뢰’ ‘믿음’ ‘의지’ 등이 결국 마음에서 비롯되기에 더더욱 북한 지도자의 진심은 중요하다.
평양 정상회담에서의 김정은 위원장은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려 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환대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자신의 의지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경어를 써가며 소개했을 것이며, 만나기로 한 곳에 상대방보다 먼저 도착해 불편함이 없도록 꼼꼼히 챙겼을 것이다. 절박한 심정이 그를 그다지도 바삐 움직이게 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능라도 경기장에서는 자신에게만 환호했던 인민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며 감동하는 모습 또한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직접 결정했지만 막상 자신의 자리에 선 남측 대통령의 모습에 혼란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연설을 들으며 모두가 환호하는 그 순간 우연히 카메라에 잡힌 그는 웃지도 그렇다고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무표정한 표정 너머 언뜻 쓸쓸함과 고독함이 묻어나오는 듯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왕국’에 이미 익숙해졌을 이 젊은 권력자가 변화를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을지, 또한 한반도 대전환의 과정에서 얼마나 깊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권력에 익숙해지는 것은 찰나라고 했던가. 절대 권력을 누려온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만이 ‘말할 수 있는’ 그 상징적 공간을 남한 대통령에게 내줌으로써 확고한 의지를 모두에게 증명하려 했다. 진심을 믿어주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자신은 권력의 달콤함도 포기할 수 있다고, 북한의 변화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되돌리지 않을 것이라 외친 것이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은 변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분단과 적대에 기대 살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그의 결심을 흔들어놓을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미국과 국제사회, 그리고 한국의 분단 세력들이 그의 의지를 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야 하는 김정은 위원장은 점점 지쳐 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결심이 내외부적인 저항에 좌절되지 않도록 기회의 틈새를 열어주는 일이다. 비핵화를 통해 북한을 개방하기로 마음먹은 그를 협상의 파트너로 정당하게 대우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앞으로 몰아칠 큰 변화의 물결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움츠러들지 않도록 신뢰를 보내줘야 한다. 무엇보다 그 어떤 방해에도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그에게 전해야 한다. 우리의 진심이 상대방에 닿아 이 지긋지긋한 분단과 적대를 바꿔내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