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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통일(統一) 이전에 통일(通一)이다 / 황재옥

등록 2018-11-05 18:24수정 2018-11-06 09:46

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민화협 정책위원장

지난 10월11일 통일부 국감에서 외교통일위원장인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정작 ‘통일’보다 ‘평화’에 대해 더 많이 언급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조명균 장관의 67회 연설에서 통일은 57회인 반면 평화는 508회나 언급했다며 “통일의 철학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지적은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 때문에 나왔겠지만, 통일이 열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에 앞서 평화가 먼저 뿌리내려야 한다는 걸 외면한 질문이었다. 이를 보면서 지난 9월 문 대통령 평양 방문 시, 문 대통령을 향해 ‘통일, 통일’을 연호하던 평양시민들이 떠올랐다. 강 의원이 생각하는 통일, 평양시민이 외친 통일, 그리고 우리가 이뤄야 할 통일은 같은 것일까?

남북 대화가 빈번해지면서 ‘통일’이란 화두가 자주 등장한다. 북한은 1960년대에 ‘연방제’, 1970년대에 ‘고려연방제’, 1980년대에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을 통일 방안으로 제시하면서 대남 공세를 폈다. 북한의 ‘연방제’를 일관되게 거부해오던 남한은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에서 ‘남북연합’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러자 북한이 1991년 신년사에서 ‘느슨한 연방제’를 제안했다. 느슨한 연방제는 사실상 남북연합에 가깝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1994년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해 자주·평화·민주의 3원칙하에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로 나아가는 3단계 통일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선 평화 후 통일’을 전제한 화해협력정책(햇볕정책)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2000년 ‘6·15 공동선언’ 2항에서 “남과 북은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서로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북한이 적화통일을 꿈꾸고 남한이 멸공통일을 외치던 시기의 ‘당장의 통일(統一)’이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평화 우선’으로 바뀐 것이다. 지난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실시된 한 여론조사(2018년 2월, 민화협과 한국리서치)에서 88.2%에 해당하는 절대다수 국민이 “통일을 미루더라도 평화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자신의 통일관은 “남북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해서 김대중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에서 밝힌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 했다. 나라는 다르지만 자유로운 왕래가 보장되는 평화적인 남북관계,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을 일궈 나가는 것, 즉 통일(通一)이 이루어지면 그게 곧 남북연합이다. 남북이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사회문화적으로 공통성이 높아지는 통일을 이루어 간다면 분단으로 인한 불편이나 고통은 최소화될 것이다.

재미 정치학자 박한식 교수는 <선을 넘어 생각한다>에서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이어야 하고, 전쟁과 공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만들어 가는 것, 단일한 문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그 자체를 즐기며 어우러지는 것”이라 했다. 급작스러운 통일로 30년이 지나도록 후유증을 앓았던 독일의 통일에서 알 수 있듯이 급박한 통일은 갈등과 고통을 동반한다. 남북 대화가 빈번해지면서 우리 내부에서 나타나는 통일 인식 차이를 비롯한 남남갈등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세대 간, 진보-보수 간, 남북 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통일(通一)이 먼저 돼야 통일(統一)도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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