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진행자 ‘2차대전 후 최악의 정치 위기다.’(영국 집권 보수당의 원로 정치인)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를 도와주고 싶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유럽이사회 도날트 투스크 상임의장) 위의 두 발언은 현재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과정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영국이 원해서 브렉시트를 결정했는데, 하원은 브렉시트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서로 다른 이유로 탈퇴조약 비준을 반대한다. 강경 탈퇴 지지자들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국경통제 없음을 유지하기(백스톱·Backstop) 위해 탈퇴 후에도 수년간 유럽연합의 법에 구속되는 것을 거부한다. 반면에 탈퇴 후에도 최소한 2년 정도의 과도기 유지, 탈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명확해졌기 때문에 이럴 경우에는 다시 국민투표를 하자는 의견이 집권 보수당뿐만 아니라 제1야당 노동당에서도 계속해서 나온다. 최근 유거브 여론조사에서도 2년 반 전 브렉시트에 찬성한 유권자 가운데 11%가 잔류 지지로 돌아서 유럽연합에 잔류하자는 의견이 오차 범위 안에서 앞선다. 문제는 대의 민주주의의 모국인 영국에서 의회가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메이 총리가 합의한 탈퇴조약이 하원에서 과반을 얻지 못할 상황이고 아직까지 뾰족한 대안이 없다. 지난 4일 하원에서 집권 보수당 일부 의원과 야당인 노동당, 자유민주당 등이 힘을 합쳐 탈퇴조약이 비준되지 못하면 의회가 향후 대책을 주도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럴 경우 정부가 의회에 21일 안에 대책을 보고하게 돼 있는데 의회가 그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탈퇴조약 비준없이 유럽연합에서 튕겨져 나가는 ‘노딜 브렉시트’를 막아보자는 움직임이다. 영국에서는 2차대전 후 단 두차례의 국민투표가 있었다. 1975년 6월과 2016년 6월. 당시 집권당만 달랐을 뿐 국민투표는 유럽연합(1975년은 유럽경제공동체) 잔류냐 탈퇴냐를 물었고, 유럽통합 문제로 집권당 내 분열이 심해 이를 타개하기 위한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직접 민주주의의 취지는 매우 좋지만 특정 정치세력이 국민투표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2년 반 전의 투표 결과가 부메랑이 되어 정치적 혼란이 가중돼왔다. 일단 메이 총리는 ‘백스톱’에 관한 유럽연합의 양보를 원하지만 유럽연합의 입장은 명확하다. 재협상은 불가하고 이와 관련한 성명서 발표 등으로 영국의 우려를 일부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영국 하원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내년 1월 말, 벼랑 끝에 몰려 탈퇴조약 비준이 강행될 듯하다. 보수당 당수이자 총리를 교체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노동당이 선호하는 조기 총선의 경우 하원 재적의원의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권 보수당이 반대하면 통과가 어렵다. 결국 막판에 실시된 조약 비준이 실패하고 조기 총선이 어려워지면, 최후의 대안으로 제2국민투표 실시가 합의될 수 있다. 유럽연합도 이런 큰 정치적 변화의 경우 내년 3월29일 밤 11시(현지시각)에 예정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한을 만장일치로 연기해줄 수 있다.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거짓말은 계속해서 드러났다. 영국은 지난해 서방선진 7개국(G7)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전년보다 하락한 유일한 나라였다. 또 영국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전망을 보면 영국은 최소한 2020년까지 경제성장률이 단일화폐 유로존보다 평균 0.3% 정도 뒤처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약속한 탈퇴 후 경제가 번창하는 ‘글로벌 영국’은 장밋빛 환상이었을 뿐이다. 브렉시트 결정은 세계화를 시작한 나라 영국에서 거세게 분 포퓰리스트 승리의 신호탄으로 이듬해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맥을 같이한다. 올해 국제정치경제를 특징짓는 핵심어는 초불확실성이었다. 내년에는 이런 초불확실성이 더 커질 듯하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전쟁은 무섭게 추격해온 중국을 견제하려는 패권경쟁의 하나이기 때문에 쉽사리 누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이고 국내총생산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정도인 우리는 초불확실성에 대비한 철저한 전략이 필요하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치밀하지만 유연한 대응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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