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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선을 넘은 대학시장의 욕망 / 김율

등록 2020-07-08 18:45수정 2020-07-09 14:17

김율 ㅣ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모니터 앞에서 학기를 시작해야 했던 지난 3월, 코로나가 빨리 진정되어 강의실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개강 인사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람은 실현되지 못하고 종강이 왔다. 원격수업으로 진행된 한 학기가 교수만 아쉬웠던 것은 아니다. 학기 내내 이어졌던 등록금 투쟁은 물론이거니와, 질문을 마음껏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는 학생들의 종강 소감이 생생하다.

원격수업의 결정적 한계가 쌍방향 소통의 부재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같은 공기를 호흡하며 표정과 몸짓으로 대화하지 못한다는 점이 대학교육에서 치명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교육이란 지식의 단순 전달이 아니라 지식의 생산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능력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실기’의 과정에서 싹트지, ‘인강’을 통해 이식되지 않는다. 화면 속의 교수가 지식의 동요를 일으키기 어려운 것은, 피아노 터치를 교정해줄 수도 없고 권투 스파링 상대가 될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7월2일 교육부는 대학들이 코로나 이후에도 원격수업을 확대하도록 규제를 풀겠다고 발표했다. 소위 ‘포스트 코로나 교육 대전환’을 위해 국내외 공동학위제 도입을 지원하고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집행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계획과 더불어 나온 말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핵심은 “이번 기회에 원격수업을 ‘뉴노멀’로 새롭게 정립해 대학교육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교육부 장관의 폭탄선언이다. 그동안 20%로 제한했던 대학의 사이버 강의 비중을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미 대학들은 경비 절감의 묘책으로 할 수 있는 한 사이버 강의를 개설해왔다. 군복무 중 학점 취득 등 예외적 효용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투자로 학점 장사를 하려는 대학의 욕망이 일부 학점이나마 쉽게 따려는 학생들의 필요를 이용했던 측면이 크다. 이제 그 욕망이 선을 넘는다. 콩나물 강의실은 화면 안에서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고, 강의 종류와 강의자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공장식 교육은 사이버 시장 논리라는 날개를 달 것이다. 이것이 의료의 본질을 팔아먹는 원격진료 허용과 다를 바 무엇인가? 코로나는 당신들의 기회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대학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이러한 발표가 아무런 공개적 토론 과정 없이 나왔다는 점이다. 6월9일 서울총장포럼이 고등교육정책실장에게 원격강의 확대를 요청한 것 외에, 교육부는 그 흔한 전문가 집단의 공청회 한번 개최하지 않았다. 학생, 강사, 교수 등 교육의 실질 주체로부터 의견을 수렴할 필요는 당연히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부가 상대하는 교육시장의 주인은 예나 지금이나 시장주의자들의 허수아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일 뿐이니, 7월2일 회의 참석 대상이 오로지 ‘대교협 추천’ 총장 30여명에 불과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잊었나 본데, 교육부의 역할은 이윤율 저하의 시대 교육시장의 활로를 터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공공성을 관리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각광받았던 다국적 원격대학 스타트업 기업 ‘미네르바스쿨’을 뉴노멀의 대학 모델로 다시 소환하기 전에, 대학의 존재 이유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 사회적, 학문적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오래된 진실을 상기하라.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이야기다. 당대 최고의 비극 시인 아가톤이 소크라테스에게 지혜를 청하며 자기 옆자리에 앉아달라고 말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가득한 잔의 물이 털실을 타고 빈 잔으로 옮겨가듯 지혜도 그런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자네 곁에 앉겠네.” 고색창연한 인문학 타령을 하려는 게 아니다. 교육이 ‘정보의 이식’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자기 능력의 발견’이라는 것은 교육학의 기초 중 기초다. 지식이 원격수업 동영상을 통해 온전히 전수될 수 있는 것이라면, 줌 화면이나 게시판 답글로 쌍방향 소통이 충분한 것이라면, 당신들이 코로나 이후의 교육을 맡아도 좋다. 자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흐르니 자본이 정하는 지식 또한 거침없이 원격으로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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