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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류호정의 원피스 / 김갑년

등록 2020-08-12 18:18수정 2020-08-18 15:45

김갑년 ㅣ 고려대학교 독일학전공 교수

‘원피스’는 성공했다.

우리는 기호로 세상을 이해하고, 기호로 소통하고, 기호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을 꿈꾼다. 우리는 기호적 동물(homo signans)이다.

류호정의 ‘원피스’는 기호이다.

2020년 8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 국회 등단’이 왜 이렇게 논란의 대상이 되는가?

지금은 2020년이다. 왜? 유시민 작가의 2003년 ‘백바지’ 사건이 17년이나 지났다. 2012년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은 보랏빛 짧은 치마지만 그래도 검은색 정장 재킷을 입어서 그냥 넘어갔나? ‘패션 정치’ 중 하나인가? 그렇게 넘어가야 하나? 정말 잘 기획한 멋진 사건인가?

‘패션 정치’의 선구자로는 서독의 외무장관을 역임한 요슈카 피셔를 들 수 있다. 1983년 그가 소속된 서독 녹색당은 연방선거에서 5.6%를 획득해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이후 녹색당의 요슈카 피셔는 37살이던 1985년 헤센주 환경부 장관 선서를 할 때 흰색 운동화와 청바지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재킷 차림으로, 기존의 가치관에 도전을 한다. 반응은 격렬했다. 당시 서독의 상황을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핵심 배경은 68혁명이다. 전전 세대와 전후 세대의 가치관의 충돌이다.

또 한 사람의 ‘패션 정치’ 사례로는 미국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브로치’가 꼽힌다. 그는 중요한 외교 석상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해 좋은 외교적 성과를 올리고 품위까지 지켰다는 평을 받는다. 2000년 6월, 60살 올브라이트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왼쪽 가슴에 햇살 모양의 브로치를 달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매우 성공적인 기호 사용이다. 올브라이트의 경우는 가치관의 충돌이 배경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사례가 있다. 그중 유시민 작가를 많이 언급한다. 그만큼 파장이 컸다는 것이다. 2003년 4월29일, 소위 말하는 ‘백바지’ 사건이다. 당시 유시민 의원은 국회에서 의원 선서를 거부당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서독의 요슈카 피셔를 모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요슈카 피셔와 유시민의 의원 선서 복장이 너무 유사하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는 90년대 독일에서 공부를 했다. 요슈카 피셔 사건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2020년 8월4일, 만 27살 여성인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 등단이다. ‘패션 정치’ 사례 중에서도 최연소이다.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 등단이 왜 이렇게 논란의 대상이 되는가?

이제 2020년이다. 2003년 당시 44살이던 유시민 의원의 ‘백바지’ 사건이 17년이나 지났다.

모든 것들이 기호이다. 인간 자체가 기호이며, 인생은 기호로 된 담론의 장이다. 기호가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고, 기호가 없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생각이 미치는 모든 것에 기호의 망이 펼쳐진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기호의 제작자이고, 자기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호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 그것을 문화라고도 하고 가치판단 체계라고도 한다. 류호정 의원의 원피스로 다시 부각된 우리나라 국회의 특정 문화 편중 현상, 그 또한 우리 문화이다.

류호정 의원이 의복의 티피오(TPO)를 몰랐을까? 아니다, 그 정반대다.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의복의 티피오란 시간, 장소, 상황에 알맞게 의복을 착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회적 활동과 문화적 활동을 기호를 통해 상징화하고 일상생활에 적용한다. 류호정 의원 역시 자신의 원피스로 상징화를 시도하였다.

우리는 문화적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나의 삶의 방식 또한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결국은 나 말고도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른 존재가 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류호정, 이제 그 자체가 기호이다. 그로 인한 변화가 기대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지난한 차별이 성차별, 곧 여성차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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