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필건 ㅣ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내 정경심 교수에 대한 공판 과정에서 다시 등장한 동양대는 사실 사학비리로도 꽤나 알려진 대학이다. 2016년 교육부 감사 결과를 보면, 약 11억원의 기부금 및 교비를 횡령했고, 최성해 전 총장 동생이 대표로 있는 건설업체에 계약을 몰아준 것이 약 120억원이다. 그가 총장으로 재임한 기간만 무려 25년이다. 당시 감사에서 사립학교법 위반 등 총 14건이 지적되었으나 교육부는 단 1건만 수사의뢰 조치하고 90% 이상을 경고와 주의 처분으로 종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적발된 사립학교의 교비 횡령·유용 금액은 정확히 3107억원이다. 그러나 비위행위자에 대한 신분상 조치 중 94%가 징계라고 볼 수 없는 경고나 주의에 불과했다. 교육부는 적발 건수의 고작 6.8%인 205건의 비위사실에 대해서만 검찰에 고발 및 수사의뢰 조치했다. 교육부와 사학이 사실상 한 몸이었던 셈이다.
해방 뒤 처음으로 사학개혁을 시도했던 건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교육부 감사에서 각종 전횡이 적발돼 임원취임승인취소 처분을 받은 ㄷ학교법인 이사장이 지팡이를 던지며 “너희들 세상 언제까지 가는지 두고 보자”고 외치던 2005년, 참여정부는 이사 정수 4분의 1을 외부 인사로 선임하여 공공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취지의 개방이사 제도를 입법한다.
그러나 법안은 개정과 재개정을 거듭하다 누더기가 돼버렸다. 개방이사추천위원회 구성을 시행령이 아닌 정관으로 정하고, 종교지도자 양성만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법인은 종교단체에서 2분의 1을 추천하도록 대폭 손질하면서 설립자 쪽 인사들이 개방이사로 취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취지는 완전히 훼손되었고, 사학법 개정 파동은 결국 트라우마로 남아 <참여정부 국정운영백서>에도 언급이 일절 없다.
“(과거에는) 사학에서 돈 받은 교육부 사람 많았습니다. 예전엔 그게 관례였어요.”(전직 ㄱ국장) “사학 쪽 근무는 서로 가려고 했죠. 돈 챙기지, 인사도 힘 있는 사학 쪽에서 이야기해주면 풀리거든. 저도 사실 도움 많이 받고 그랬죠.”(전직 ㄴ실장)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교육부와 사학은 다시 한 몸뚱이로 돌아갔다. 온갖 비리를 저질러 학교에서 쫓겨난 인사들이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하고, 사분위 회의에는 담당 과장이나 팀장이 아닌 최고위직(1급)인 대학지원실장이 직접 참석해서 옛 재단 복귀 업무를 챙겼다. 당시 이를 적극적으로 지휘한 교육부 고위 간부 ㄱ씨의 딸은 사분위로 복귀한 옛 재단이 운영하는 ㅅ대학교 계약직 교직원으로 들어갔다가 정직원이 되어 지금도 잘 다니고 있다. 지팡이를 집어던진 이사장 일가도 이때 복귀했다.
마음이 급했던 것일까. 당시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옛 재단 복귀 심의 과정에서 개방이사 추천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2008~2015년 사분위를 거쳐 복귀한 모든 학교법인 이사회에 개방이사가 없는 이유다. 사립학교법 제14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이 황당한 행위는 당연히 대법원에서 무효로 확정판결되었고 일부 교육 시민단체는 이를 진행한 관련자 전원을 고발 조치 검토 중이다. 또한 ‘종교지도자 양성만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법인만이 당해 종교단체에서 개방이사 추천권이 있는데 대한민국 대부분의 종교 및 신학대학은 ‘종교지도자 양성 관련 학과’만이 아니라 인문대, 공대, 예술대 등을 포함하는 사실상 ‘종합대학’임에도 교육부가 이를 승인해준 것 역시 명백한 사립학교법 위반(제14조와 동 시행령 7조의2)이다. 이처럼 쫓겨난 사람들을 복귀시켜주고, 비리를 저질러도 불문 경고로 사건을 종결할 때 교육부의 위신은 점점 추락해갔다. 사학들이 교육부를 우습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2014년 8월, 어느 대학 총장 ㅇ씨는 교비 3억원을 들여 매입한 천경자 화백 작품 등 미술품 1000여개를 본인 소유로 관리하다 교육부 감사에 적발된 바 있다. 격분한 그는 학교 직원들을 총장실로 불러 모아 “그거 하나 똑바로 처리 못 하냐”며 폭언·폭행하였고,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자 ‘권력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교육부 간부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한 참담한 일도 있었다. 이런 외압에 맞서 싸워줄 사람 하나 없던 교육부는 국민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뒤 결국 폐지론에 시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