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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비리 사학 척결은 아직 미완성 / 전필건

등록 2020-09-14 18:23수정 2020-09-17 10:49

사학비리를 고발한다 ④

전필건 ㅣ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학교법인 이사장과 이사 등 임원은 직위해제 대상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교원의 직위해제는 되나, 임원 직위해제 규정은 없다. 또 교원과 직원의 당연퇴직 규정은 있으나 임원은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사립학교 임원은 횡령·배임으로 벌금·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도, 심지어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도 직을 유지할 수 있다. 학교법인 현암학원(동양대학교) 이사장을 지낸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다. 그는 지난 1일, 이 부회장과 함께 자본시장법 위반, 배임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현암학원 이사회는 9월7일 임기 만료였던 김종중 이사의 연임을 의결했다.

이런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고 사학 비리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는 2017년 10월 특별기구인 사학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그 활동 성과를 토대로 교육부는 지난 2월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안과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대한 특례 규칙 개정 등을 대거 입법 예고 및 행정 예고했다. △횡령과 금품수수 적발시 임원의 승인 취소 규정 명확화 △비리 연루 임원은 금액에 상관없이 즉시 고발 또는 수사 의뢰 조치 △설립자 등과 친족 관계인 교직원 공시 △설립자와 친족은 개방이사 선임에서 제외 등을 내용으로 한 사학 비리 차단책이었다. 21대 국회도 임원의 당연퇴직 규정 신설 등 사학혁신위가 권고한 모든 법 개정 사안 발의를 7월 완료했다. 한 걸음 나아가는 데 너무 오래 걸렸지만 한 고비는 넘었다.

사학 비리를 척결하려면 입법기관인 국회, 검찰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2014년 10월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는 국정감사 증인 채택 논의를 밤늦게까지 하고 있었다. 관건은 수원대 총장 이인수의 소환 여부였는데, 당시 새누리당 신성범 간사와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간사가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이인수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때 갑자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비서실장인 김학용 의원이 나타나 죽어도 안 된다며 반대하기 시작했다. 김태년 의원과 김학용 의원 간에 고성이 오가더니 결국 합의가 취소된 참담한 일이 있었다. 이달 10일 서울중앙지검은 업무상 횡령·배임, 사립학교법 위반 등으로 고발된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 사건을 무려 12개월간 끌다가 안동지청으로 이송해버렸다. 전광훈 목사를 석좌교수로 초빙하려고 했던, 영적 동지로 알려진 이강평 서울기독대 총장 고발 건은 18개월이 지났지만 소식조차 없다. 이처럼 국회와 검찰이 제 역할을 못 하면 사학 비리 문제는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교육부 내부에도 문제가 많았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 취임 전 관료들과 교육비서관이 미리 인사를 단행하면서 쇄신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최소한 직원들에게 ‘대가리를 박으라’ 막말하던 간부나, 실무자들에게 과오를 떠넘기고 몸을 피한 간부 등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했으나 이들은 인적 청산의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교육부 밖에선 ‘마피아들이 움직인 결과’라는 말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서울사대 마피아’ 출신 ㄱ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를 챙기던 진주 마피아(경상도 인맥) 출신 민간인 ㄴ씨가 현장에서 적발돼 국회에서 쫓겨나는 망신을 당했어도, 사립학교 이사장들이 ‘예전만큼 돈값을 못한다’며 교육부 전관 대신 정치인, 판검사, 감사원 출신들을 영입하고 있음에도 철 지난 ‘교피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교육부가 자초한 일이다. 사학 감사, 조사 업무가 소관인 감사관실은 사학혁신기구를 꾸릴 때 ‘우리는 이딴 직제개편에 동의한 바 없다’며 발을 빼버렸고, 일부 관료는 적폐청산은 그만 좀 하자는 의견을 당당하게 펼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학혁신위 운영 동안 교육부는 65개교를 감찰해 755건의 위법 사항을 적발했고, 임원 84명을 취임 승인 취소, 2096명을 징계 조치했다. 136명은 고발 및 수사 의뢰 조치했다. 사학 비리 업무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외압을 막는 것이다. 김상곤 전 부총리와 유은혜 부총리는 우산 역할을 했다. 1년 동안 20여개 대학 조사를 수행한 사무관 등 교육부 공무원의 숨은 헌신도 있었다. 이런 각고의 노력이 사학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대하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위들이 강물의 흐름을 잠시 막을 수는 있겠지만, 강물은 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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