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종복 ㅣ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인문사회과학책방 제주풀무질 일꾼
오는 11월이면 새롭게 도서정책을 편다. 지금 사람들은 책을 살 때 10% 싸게 사고 5% 적립할 수 있다. 2014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정책이다. 그나마 이런 부분도서정가제로 씨가 말랐던 동네책방들이 하나둘 다시 생겨났다. 2019년 7월부터 16차례에 걸쳐 민관단체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다음 세가지를 합의했다. 첫째, 책을 살 때 10%만 싸게 준다. 둘째, 책이 나온 지 1년이 지나면 책값을 다시 매겨서
팔 수 있다. 셋째, 헌책방은 책이 나온 지 1년이 안 된 책은 팔아선 안 된다. 그런데 이런 합의안을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갑자기 뒤집었다. 1년 넘게 회의를 해서 내린 결론을 없던 일로 했다. 이유는 ‘소비자 후생’이다. 소비자가 책을 좀 더 싸게 살 수 있도록 정책을 바꾸겠다고 한다. 그나마 있는 부분도서정가제를 없애거나 더 큰 폭으로 책값을 싸게 주겠다는 뜻이다. 나는 서울 명륜동에서 26년 동안 책방을 꾸리다가 다시 제주도에 내려와 책방을 한다. 제주도에는 요 몇년 사이에 바닷가에 작은 동네책방이 50곳 넘게 생겼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로 정부가 하려는 도서정책을 반대한다.
1. 왜 제주도에는 동네책방이 많을까. 제주도에선 완전도서정가제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들이를 온 사람들은 책을 싸게 사려 하지 않는다. 만약 지금보다 큰 폭으로 현금 할인을 해준다면 제주도에 있는 책방은 모두 문을 닫는다.
2. 동네책방은 마을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다. 그곳으로 아이와 어른이 손을 잡고 들어와 그림책을 사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3. 동네책방은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다. 마을에 노래방, 소주방, 복덕방, 점방, 머리방, 약방, 전자놀이방도 있어야 하지만 책방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가. 마을 분들은 동네에 책방이 하나 들어오면 마을 품격이 높아졌다고 좋아하신다.
4. 동네책방은 마을에 있는 다른 단체들과 아름답고 살맛 나는 마을을 만드는 데 힘을 쓴다. 그곳에서는 달마다 시 낭송회, 책읽기 모임, 음악회, 작가와의 만남, 연극 공연이 꾸려진다.
이런 동네책방에 지금 있는 부분도서정가제마저 없어진다면 모두 문을 닫는다.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기존에 합의한 대로 정책을 펴야 한다. 책값을 싸게 해준다고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살까. 아니다. 사람들은 필요한 책이 있으면 제값을 주고 산다. 우리나라 책값은 다른 나라에 비교해서 비싸지 않다. 책값 인상률도 다른 물품 인상률보다 낮다. 오히려 책을 싸게 팔면 나중에 책값을 오르게 해 사람들이 책을 비싸게 사게 될 뿐이다. 부분도서정가제가 있을 땐 책값이 턱없이 오르진 않았다. 책을 싸게 주면 출판사들은 할인율과 광고비를 생각해서 책값을 큰 폭으로 올린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지 않는다.
답은 완전도서정가제이다. 영어를 쓰는 나라들을 빼곤 대부분 나라들이 완전도서정가제를 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에 있는 많은 나라들과, 가까이 있는 일본만 하더라도 도서정가제를 한다. 사실 부분도서정가제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도서정가제라고 하면 당연히 완전정가제이지 15% 싸게 주는 것이 무슨 도서정가제인가. 그것도 3년마다 새로 법을 만든다. 그럼 왜 많은 나라들이 완전도서정가제를 할까. 책은 다른 공산품과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한권 읽는 것은 한 사람이 가진 우주를 읽는 것이다. 그냥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완전도서정가제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