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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후보자 공천, 누구 마음대로 하고 안 하나 / 김형태

등록 2020-11-04 16:01수정 2020-11-05 02:37

김형태 ㅣ 변호사

지난 7월 어느 날, 티브이(TV) 화면은 저녁 내내 자연인 ‘박원순’이 시커먼 모자에 등산복 차림으로 북악산 자락 어느 주택가 골목길을 허위허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보여주었다. 그렇게 보아서인지 화면 속 그는 넋이 다 빠져나간 채 몸만 그저 기계처럼 골목길을 돌아나가고 또 돌아나갔다. 한 개인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를 터. 하지만 이제 그가 남긴 업보로 우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라는 예정에 없던 큰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보다 먼저 부끄럽게 사퇴한 ‘오거돈’ 덕분에 부산시장 보궐선거까지.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를 하게 만든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자를 공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를 놓고 정치권과 언론에서 공방이 한창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헌법과 정당법은 정당이 자기 마음대로 후보자 공천을 포기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누구 마음대로 공천을 포기해? 정당의 공천이란 게 어디 민주당 마음대로, 국민의힘 마음대로, 정의당 마음대로 포기할 수 있는, 정당의 재량에 맡겨진 그런 권리가 아니다. 공천은 헌법이 정해 놓은 정당의 의무이다. 정당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8조 제2항은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부연하여 ‘정당은 무정형적인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집약, 정리하고 구체적인 진로와 방향을 제시하여 국정을 책임지는 공권력으로까지 매개하는 중요한 공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한편 정당법 제44조는 재보궐선거가 아닌 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에 국한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4년간 국회의원, 지방자치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 등록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처럼 근대 민주정치의 핵심 제도인 정당은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대변할 의무가 있기에 제 마음대로 선거 후보자 공천을 포기할 수가 없다. 설령 어느 정당의 잘못으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정당이 박원순, 오거돈 개인처럼 ‘내 죄를 내가 반성하고 출마를 않겠습니다’하면서 도덕적 양심적 고해를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애초 2015년 7월 문재인 대표 시절 민주당이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당헌을 개정한 것이 잘못이다. 민주당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하게 된 것을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은 책임정치에 부합하는 당연한 자세다. 유권자들이 이 사과와 반성을 받아들이면 다시 선택하는 것이고 이번에는 한번 제대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다른 정당 후보자를 찍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예 후보를 내지 않는다면, 그래도 그 정당의 정강 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찍으란 걸까. 이런 내용의 당헌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라는 헌법의 명령을 잊고 공천을 자기 당의 ‘권리’쯤으로 아는, 민주정치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건 여야 입장 차이를 떠난, 중립적 제도, 절차의 문제다. 지난 총선에서 크게 진 야권은 당명도 ‘국민의힘’으로 바꾸고 ‘태극기 부대’와 선 긋기에 한창이다. 하지만 여기서 배제되고 있는 극우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답답하고 억울할 일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해 줄 거라고 믿었던 정당이 자신들과 선을 그으니 말이다. 이들을 대변하는 후보자를 공천해 줄 정당이 없다면 이 역시 헌법이 예정한 정당 제도의 취지에 벗어나는 일이다.

이번에 민주당은 전당원 투표를 통해서 현행 당헌에 예외 조항을 두어 공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구차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모든 정당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후보자를 공천해서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해야 한다. 이는 결코 전당원 투표를 통해서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헌법적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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