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ㅣ 우분투 사회연대연구소장
“내 아들을 살리진 못해도 다른 용균이의 죽음을 막고 싶다.”
매서운 강추위 속에서 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의 절절한 외침입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목소리는 강한 칼바람을 녹일 만큼 뜨겁게 느껴집니다.
2016년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인 김아무개 노동자가 출발하던 전동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19살에 불과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19살 청년의 유품이 되어버린 먹지 못한 가방 속 컵라면이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18년 김용균씨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작업을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을 때 25살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산재 사망사고는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업은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반면 노동자, 특히 지위가 열악한 비정규직, 하청, 비숙련 청년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구조에 대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소위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2020년 1월 드디어 국회에서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산안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산재사고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동법에 2인1조 근무와 위험설비 하도급 금지 등이 규정되어 있지 않고 경영자가 산업안전관리자를 지정한 경우 처벌의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으며 처벌 수위도 약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재사망률 1위의 오명을 받고 있습니다. 연 2200명, 하루 5.8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산안법 위반 재발률이 97%에 달하며, 중대재해사업장 처벌 중 실형 선고율은 0.4%, 기업이 산안법 위반으로 내는 벌금은 평균 450만원에 불과합니다.
세계 10위 경제강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이윤과 목숨을 맞바꾸는 전근대적인 노동 관행이 여전히 잔존하는 것이 우리 산업현장의 민낯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 산재로 인한 죽음의 행렬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영국은 2007년 기업 등이 주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숨지면,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상한이 없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기업 과실치사 및 살인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산재사망률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보다 산재사망률이 30배 정도 낮은 영국에서 이미 12년 전에 시행한 법이니 우리가 늦어도 한참 늦은 것입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핵심은 경영자와 법인 그리고 원청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야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이 몇가지 쟁점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임시국회 내에 제정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반드시 처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법은 기업을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 현장에서 경영자의 책임과 처벌규정을 강화하여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풍토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겠지만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관념이 뿌리내리는 마중물이 될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법 제정을 통해 아침에 출근한 가족이 저녁에 웃으며 퇴근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고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