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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저출산 시대 새로운 길, 성평등 / 문유경

등록 2020-12-30 18:55수정 2020-12-31 02:38

2021년 ‘저출생’은 완화될 수 있을까

문유경ㅣ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지난 15일 정부는 향후 5년간 추진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15년간 지속해온 출산장려 패러다임을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성평등 구현으로 전환할 것을 선언한 이후 처음으로 발표된 기본계획이다.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떨어지고도 상승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획기적’ 처방에 대한 갈증이 높았던 탓인지 일각에서는 이전의 접근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실망감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기본계획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발견’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성평등이다.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가 세가지 목표 중 하나로 제시되었다. 성차별적 노동시장, 임신·출산으로 인한 불이익, 돌봄 공백 등을 저출산 현상을 초래한 다양한 원인 중 하나로 진단했다. 해법으로 채용, 승진, 임금 등 고용상 성별 격차 정보를 가시화하는 성차별 예방 및 성평등 경영문화 확산을 위한 성평등 경영공표제 도입, 성차별·성희롱 피해 구제 및 예방 강화를 위한 노동위원회 구제 절차 신설, 대표적인 여성집중 업종이자 저평가 분야인 돌봄노동 가치 제고 등 “성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정책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문제 진단과 해법에는 과거 저출산 기본계획에서 한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청년들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양육자라는 전통적인 성별 분업을 거부하며, 평생 노동을 전제로 자신의 생애를 기획하는 남녀 청년세대의 변화된 삶의 방식을 지원함으로써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자녀양육지원에 있어서도 성평등 기조가 반영되었다. 여성에게 집중된 돌봄을 완화하기 위해 아버지의 돌봄 참여 확대와 함께 시간, 비용, 서비스 등의 측면에서 가족의 양육 부담을 사회가 분담하는 체계를 강화했다. 특고, 프리랜서 등을 포괄하여 육아휴직을 보편적 권리로 확대하고, 영아기 부모 모두의 육아휴직을 지원하는 3+3 육아휴직제도 도입되었다. 아울러, 영아 양육과 아동의 건강한 발달을 지원하는 생애 초기 육아비용 지원, 2025년까지 공보육 이용률 50% 달성, 시간제 돌봄서비스 대폭 확충 및 아이돌봄서비스 강화를 통해 부모가 행복하게 자녀를 양육하고 사회가 돌봄의 촘촘한 체계를 보장하는 구조를 지속적으로 구축해나가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처럼 기본계획 수립에 성평등 관점이 포함된 것은 그동안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사회의 저출산 정책과 성평등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저출산 현상은 청년층 내에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젠더 관계의 산물이며, 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회제도와 시스템, 문화가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으나 법, 제도, 정책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청년 남성은 가부장적 가족과 직장이 요구하는 ‘가장’의 역할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며, 청년 여성은 임신, 출산, 양육의 기회비용을 치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일자리나 주거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화된 전통적 역할을 강요하는 임신, 출산, 결혼을 생애 과업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청년들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편적인 출산장려 정책은 청년들이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출산율 제고에도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다. 남녀의 역할을 구분하고 다르게 할당하는 전통적 형태의 가족이 주는 구속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자 하는 청년층의 변화를 지원할 수 있는 성평등 관점을 좀 더 과감히 받아들일 때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낙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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