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ㅣ 시인·청와대 앞 무기한 단식 42일차
어제(1월31일)도 경찰 폭력에 항의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의사들 권유를 거부하고 누워 있지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도대체 무엇이 더 부족한가? 세월이 부족한가. ‘김진숙만은 안 돼’, 한진중공업 사측을 넘어 경총과 전경련이 기를 쓰고 막았다는 36년차 노동계 블랙리스트, 그 창살 없는 감옥의 세월이 부족한가. 도대체 그의 해고가 명백한 ‘국가폭력과 결탁한 부당해고’였음을 확인시키는데 어떤 증거가 더 부족한가?
1986년 2월20일 스물여섯 용접공 시절. 돈 벌어 고향 가는 게 금의환향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노조 대의원이 된 뒤 ‘생활관 및 도시락 개선방안, 산재환자의 불이익 처우개선’ 등이 ‘현 노조 집행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생겨난 결과라고 생각’된다는 취지의 열여덟줄짜리 짧은 글 하나를 적은 뒤 150부를 복사해 동료 조합원들에게 나눠준 게 다다. 5월 대공분실에서 와서 일하고 있는 그를 영장도 없이 두번에 걸쳐 잡아가 죽을 만큼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한번은 욕조까지 빨간 방, 한번은 벽까지 노란 방이었다고 한다. 세번째는 행방불명된 동료 두명을 찾으러 왔다는 까닭으로 끌려들어가 또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회사는 ‘경찰 조사를 받는 자’라는 빌미로 업무배제를 시켰다. 조합원들이 없는 외부 시설과 해보지 않은 업무로의 전환배치 등 탄압을 하다 그가 저항하자 경찰과 회사 관리자, 어용노조 간부들이 들이닥쳐 집에 감금하고 출근을 못 하도록 한 뒤 그해 7월14일 ‘무단결근’을 핑계로 해고했다. 두번째 끌려갔을 때는 쇼핑백에 돈을 준비해서 테이블에 쌓더니 ‘3천만원이다. 지금 당장 대의원 사퇴서와 회사 사직서를 쓰면 이 돈을 주겠다’고 회유 협박하기도 했다 한다. 6개월여 흐른 1987년 1월14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났는데 그런 대공분실에서 본인 역시 손바닥만 한 피딱지를 몇번에 걸쳐 떼어내야 할 정도로 고문당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이름 없는 노동자의 설움이었다.
23년이 흐른 뒤인 2009년 11월에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라목에 의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고 복직 권고를 받게 되었다. 관련 증서에는 “귀하는 대한민국의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켰으므로… 이 증서를 드립니다”고 쓰여 있다. 그 명백한 부당해고에 대해 인정하고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일이 ‘업무상 배임’이란다. 더더욱 이런 주장을 현재 한진중공업의 주채권사인 국책은행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이 앞서 주장하고 있고 청와대와 정부, 국회 등에서 동조하며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인정받은 ‘민주화유공자’ 확인과 ‘부당해고에 따른 복직 및 명예회복 권고’를 촛불정부라는 이 정부가 나서서 막고 있는 일이다.
도대체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부산광역시의회가 여야 합의로 ‘한진중공업 졸속·투기 매각 반대와 김진숙 즉각 복직’ 결의문을 채택해주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에서도 전례없이 여야 합의로 ‘김진숙 복직과 명예회복 즉각 이행’ 결의문을 내주었다. 170여명의 사회 원로 선생님들이 세차례에 걸쳐 복직 권고를 전해주었다. 210개 여성단체와 60여개 보건의료단체와 인권단체들이 선언을 내주었다. 2011년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 흐름에 쐐기를 박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전세계적인 사회연대운동의 전기를 만들었던 희망버스 승객들과 기획단들이 다시 나서 오늘로 42일째 극한의 무기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도대체, 도대체 어떤 고문과 불행과 저항과 갈등이 더 필요한가? 1월19일 정부청사에서 만난 정세균 총리는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이 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는지 미안하고 답답하다 했다. 1월28일 국회에서 만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청와대와 정부와 집권여당이 잘 알고 있다는 그 내용은 무엇인가.
과거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뒤로나 숨었지,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과 대통령이 심어둔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절대 안 되는 일이라고, 답이 없으니 포기하라고 이 겨울 내내 가로막고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