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7일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복직기윈 희망 뚜벅이행진’ 마지막 복적지인 서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수천번을 마음 속으로 외쳤던 말, ‘저 복직해요!’”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복직 결정 직후인 23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대한조선공사 부산 영도조선소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1직 노동자 김진숙’이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된지 37년 만인 오는 25일 복직한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에이치제이(HJ)중공업이 김 지도위원의 명예복직과 퇴직에 전격 합의한 데 따른 조처다. 이 합의에 따라, 김 지도위원은 25일 복직하고 당일 퇴직하게 됐다. 퇴직과 관련한 나머지 사항은 노사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1989년 국영기업이었던 대한조선공사를 한진그룹이 인수해 한진중공업으로, 2021년 이를 다시 동부건설 컨소시움이 인수해 에이치제이(HJ)중공업으로 바뀌었다.
김 지도위원은 21살이었던 1981년 대한조선공사 영도조선소에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1986년 2월 노조 대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선전물을 배포했다가 경찰 대공분실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다섯달 뒤인 1986년 7월 회사는 김 지도위원을 해고했고 이후 조선소로 돌아오지 못했다.
김 지도위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같이 싸우다 먼저 돌아가신 동지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나고, 미안하기도 하다”며 “그분들이 다들 이 순간을 기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희망버스 때 함께 했던 분들 청와대까지 함께 걸어오셨던 분들, 2년 넘게 투쟁했던 한진중공업지회의 힘이 모여 복직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해고노동자’ 김 지도위원은 늘 영도조선소 노동자와, 또 노동자들과 함께 해왔다. 2003년 노조의 파업에 대한 회사쪽의 손해배상·가압류 청구에 항의하며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과 곽재규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2011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됐을 때도 앞장서 싸웠다. 특히 2011년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오른 309일 고공농성은 전국적인 ‘희망버스’ 운동으로 확산돼 ‘새로운 노동운동’이라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영도조선소 뿐만 아니라, 김 지도위원은 쌍용자동차·케이티엑스 승무원·영남대병원 등 해고된 노동자들 곁에서 늘 함께 했다. 노동자 집회에서 연설은 물론, 85호 크레인에서 시작한 트위터 메시지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또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정작 자신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2003년 김주익·곽재규 조합원 투쟁 이후 한진중공업 노동자 20명이 복직했지만 김 지도위원은 제외됐다. 2009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1986년 김 지도위원의 ‘노조민주화 투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부당해고로 인정해 복직을 권고했지만, 한진중공업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만 60살 정년을 앞둔 2020년, 본격적인 복직투쟁이 시작됐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회사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조합원들이 곡기를 끊었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2020년 9월 복직을 재권고 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나 부산시의회에서도 한진중공업에 복직을 촉구했다. 정년을 하루 앞둔 2020년 12월30일부터는 시민사회단체, 다른 해고노동자들이 부산부터 청와대까지 함께 걸으며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두고 ‘배임’에 해당한다며 요구를 거부해왔다. 변화의 조짐이 있었던 것은 지난해 9월 동부건설컨소시움이 한진중공업을 인수하고, 지난해 12월 에이치제이중공업으로 ‘새출발’하면서부터다. 지난 20일께부터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둘러싼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합의에 이르게 됐다. 에이치제이중공업은 “법률적 자격 유무를 떠나 과거 같이 근무했던 동료이자 노동자가 시대적 아픔을 겪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명예로운 복직과 퇴직의 길을 열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지도위원의 복직·퇴임식은 오는 25일 열린다. 구체적인 행사계획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김 지도위원이 평소 바라던 대로 직원식당에서 조합원들과 식사를 하고, 자신이 일했던 곳 그리고 먼저 세상을 뜬 ‘동지’ 박창수·김주익·곽재규·최강서씨가 일했던 곳을 둘러볼 예정이다.
김 지도위원은 “저야 조합원들도 있고 공장도 있으니까 37년 만에라도 꿈을 이룰 수 있었지만, 70~80년대 독재정권시절에 힘들게 투쟁했던 청계피복노조, 동일방직, 와이에이치(YH) 노동자들은 돌아갈 공장도 없다. 부산에도 삼화고무를 비롯한 신발공장 노동자들이 여전히 해고자의 딱지가 붙은 채 남아있는데, 최소한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복직 권고를 받은 노동자들 만이라도 특별법을 통해 명예복직이라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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