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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정한 경쟁과 능력주의

등록 2021-06-28 16:39수정 2021-06-29 14:02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국회 본청 당 대표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7일 국회 본청 당 대표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세상읽기] 이강국ㅣ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공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대표는 미국과 같은 정글의 경쟁을 한국에 도입하고 싶다며 공정한 경쟁을 내세운다. 그의 공정은 보수파의 시각으로 시험과 같은 경쟁의 결과가 지위를 결정하는 능력주의에 기초한 절차와 형식의 공정이다. 많은 청년들은 이러한 주장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동물의 종류가 다르듯 가정이 제각각인 아이들 사이에 경쟁이 정말로 공정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여러 연구들은 아이들의 노력과 실력이 부모나 가정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한다. 어렸을 때 가난해서 받는 심각한 스트레스는 뇌의 발달을 막으며, 임신한 엄마의 환경 요인이 아기가 태어난 후 건강과 소득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에서 공정한 경쟁이란 허구에 가깝다. 날 때부터 출발선이 다르고 누군가는 경기장에 서기도 힘든 상황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형식적 공정만 밀어붙이면 결과의 불평등이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자신의 실력으로 성공했다는 능력주의 신화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것이다. 경쟁지상주의와 시험에만 기초한 능력주의는 불평등의 세습과 기회 격차를 강화하여 실질적 공정을 해칠 수 있다. 평등 없는 공정의 한계다. 진보가 공정 개념에서도 약자에 대한 배려와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공정을 외치는 청년들이 집집마다 수저가 다른 현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미 불평등은 바꿀 수 없는 초기 조건이니 ‘부모 찬스’ 같은 것 없이 마음껏 경쟁할 수 있도록 절차의 공정이라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이는 역시 현 정부가 공정을 강조했지만 청년들이 보기에 반칙과 같은 경우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세심한 정책을 통해 현실의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주는 데에 실패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크다.

 지위의 배분 과정에서 형식적 공정에 대한 요구가 강해진 것은 어찌 보면 불평등이 심하고 과거에 비해 성장과 상향이동의 기회가 줄어든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의 불평등과 형식적 공정 사이에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조차 존재한다. 진보 세력은 이러한 악순환을 깨고 결과와 기회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형식만의 공정을 때로는 억제하는 것이 어떻게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청년들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에서는 능력주의를 단지 비판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확장하는 노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흔히 공정한 경쟁이나 능력주의 논의는 주로 대학 입시나 입사 때와 같은 시험 과정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험을 넘어 일상의 노동과 삶에서 노력하고 기여한 만큼 대가를 받는 제대로 된 능력주의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불평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일터와 시장을 포함한 여러 영역에서 공정과 능력주의의 부족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 비슷한 일을 해도 노동자의 지위에 따라 임금이 크게 차이가 나고 생산에 대한 기여와 보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재벌기업들이 하청기업을 힘으로 억누르고 상속을 위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도 공정하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위 계층의 공고한 성안에 들어가는 좁은 성문을 통과하는 데만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성 안팎 모두에게 공정과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나아가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인 고소득층의 몫이 과연 정말로 그들의 능력과 공정한 경쟁에 기초한 것인지에 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이는 부자들이 장악한 정치와 독점과 기득권의 지대 추구에 대한 비판, 그리고 과도한 연공급으로 대표되는 임금 구조와 공공 부문의 개혁에 관한 논의들로 이어져야 한다.

 이준석 대표는 누구나 교육을 통해 공정한 경쟁의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에게 어떤 공정이 필요한지는 모두가 고민해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최근의 공정 논란이 협소한 시험의 공정을 넘어 기득권을 깨는 전면적인 공정으로, 그리고 평등과 함께 가는 공정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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