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달 궤도를 돌고 있는 아폴로 8호 우주선에서 본 지구. 나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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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
콘텐츠기획팀 선임기자
21세기 두 번의 10년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기술계의 대표적 흐름을 꼽으라면 두 가지를 들고 싶다.
먼저 생명과학이다.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의 모든 염기서열 읽기를 마쳤다. 이후 유전자를 편집하고, 교정하고, 합성하는 시대를 열었다. 세계는 지난해 노벨상으로 그 성과를 인정했다. 코로나19 1년 만에 백신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유전자 과학의 성취 덕분이다.
2010년대엔 인공지능이 주인공이었다. 딥러닝이 물꼬를 트고 ‘바둑의 신’ 알파고가 기폭제 구실을 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제 일과 생활 전 부문에 파고들었다.
2020년대엔 어디에서 바람이 불어올까? 10년 중 1년 반이 지났을 뿐이지만 강력한 후보가 있다. 우주과학기술이다.
몇가지 근거를 보자. 우선 일반인도 우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우주정거장 방문뿐 아니라 우주선을 타고 지구궤도 돌기, 우주 경계선을 찍고 돌아오기 등 다양한 기술이 나왔다. 좀 더 저렴한 성층권 여행도 대안으로 등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것을 정부가 아닌 기업이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이에겐 아직 ‘그림의 떡’이지만 우주여행의 문턱은 점차 낮아질 것이다.
수천개의 군집위성을 이용하는 우주인터넷은 벌써 시범 서비스가 시작됐다. 케이블망 없이도 세계 어디서나 통신이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수만개의 위성 출현은 우주쓰레기 수거라는 신종 산업을 예고한다.
우주탐사 다원화도 빼놓을 수 없다. 달엔 기지를 건설하고 화성에선 표본을 가지고 온다. 소행성에선 충돌 위험에 대비한 궤도 변경 실험을 한다.
무엇보다 심상찮아 보이는 게 있다. 지상에서 우주로 확장해가는 미-중 대결의 폭발력이다. 로켓, 우주선에서 우주인터넷, 우주정거장, 행성 탐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방위 추격이 거세다. 우주기술은 방향을 돌리면 군사기술이 된다. 향신로를 찾아 신항로 개척에 나선 15세기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연상케 한다. 만약 우주에서 자원 채굴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면 경쟁은 차원을 달리해 급가속할 것이다.
우주는 이제 과학·탐사 영역을 지나 산업·개발 영역까지 나아갔다. 과거의 우주가 민간 기술이전을 통해 경제에 영향을 끼쳤다면, 지금은 우주 자체가 경제 현장이 됐다. 세계 투자가들은 첫 조만장자가 나올 분야로 우주산업을 꼽는다.
‘우주화’의 근원적 힘은 수천년 인류 문명을 ‘지구 표면의 2차원 삶’이란 한마디로 치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우주가 인류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제3의 차원으로 결합된다면 미래세대에겐 전혀 새로운 가치와 기회의 문이 열릴 수 있다. 우주는 지구의 삶을 객관화하는 좋은 프리즘이기도 하다. 많은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로 돌아온 뒤 가치관의 변화를 토로했다. 우주여행의 대중화는 그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우주기술 개발 의지를 다지기 시작한 듯하다. 그러나 천문학적 자금과 총체적 과학기술 역량이 필요한 우주 탐사와 개발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정부가 어떻게 물꼬를 트고, 어디로 물길을 유도하느냐가 중요하다. 개별 목표에만 꽂히지 말고 꿈과 도전욕을 두루 자극하는 기회로 활용했으면 한다. 기존 시스템이 담을 수 없는 미래세대 역량의 분출구가 될 수 있다.
20세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촉매는 세계화 그리고 디지털화였다. 21세기엔 우주화가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다. 그 물결을 어떻게 슬기롭게 탈 것인가? 왜 지금 우리는 우주에 눈을 돌리려 하는가? 그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고 다지는 것이 우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해야 할 첫 임무다. 무수한 실패를 감수해야 할 그 길을 헤쳐나갈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