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스타츠카날의 임시 야간 보호소에서 밤을 보낸 망명 신청자들이 지난 18일(현지시각) 테르 아펄의 등록센터에 도착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김진화 | 연쇄창업가
최근 유럽 정세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난민 문제다. 대규모로 유입된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심각한 사회 갈등이 유발된 것은 물론이고, 유권자들로 하여금 극우정당 지지로 몰리게끔 하는 뚜렷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추세는 젊은 유권자층에서 더 도드라진다. 일반적으로 유럽 극우정당 지지자의 이미지는 “백인 남성, 저학력, 고령층”으로 집약됐는데, 최근 들어 여러 나라에서 청년층의 극우파 지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네덜란드 총선 결과가 대표적이다. 네덜란드의 트럼프라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자유당(PVV)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1당으로 부상해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18~34살 유권자층에서 이전 투표 대비 10%포인트 지지를 더 끌어낸 것이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린 르펜이 25~34살 유권자층에서 49%를 획득했고,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당 역시 35살 미만 유권자들의 가장 높은(22%) 지지를 발판 삼아 총선에서 승리했다. 유럽 극우정당의 부상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지지층의 변화, 청년층의 정치적 입장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유럽의 모범국가로 손꼽히던 스웨덴에서 들려오는 놀랄 만한 소식들은 유럽 여러 나라 청년층의 입장 변화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짐작하게 한다. 대규모 난민 유입 뒤 사회 갈등이 불거지고, 이민자 공동체를 배경으로 결성된 폭력조직을 중심으로 총격 사건이 빈발하는 등 치안 체계 전반이 붕괴하고 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중앙은행 총재까지 나서서 갱단 폭력으로 스웨덴의 최대 자산인 사회적 신뢰가 붕괴할 수 있으며, 성장 잠재력마저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그나마 점잖은 축에 속한다. 이대로 가다간 사회가 붕괴하고 국가가 소멸할 수 있다는 공포 마케팅까지 횡행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대 복지국가의 전범으로 자주 거론되던 일종의 모델국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 10여년간 스웨덴에서 일어난 사회 변동이 얼마나 드라마틱했을지, 구성원들이 느꼈을 혼란상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난민 유입으로 인한 사회 갈등의 폭증과 치안 체계 붕괴는 트리거(방아쇠)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그 이전에 이미 취약해진 사회 구조와 여기서 비롯된 삶의 위기가 구조적 원인이라는 진단도 대두된다. 주거 문제와 부동산 이슈에서 벤치마킹 모델로까지 거론되곤 했던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주택 부족 문제가 대표적이다. 일자리도 부족하고 원하는 임대주택에 입주하려면 몇년을 기다려야 하는지도 암담한 상황에서 난민에 대한 호의와 선의에 기반한 통합을 기대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삶의 위기를 직감한 한국 청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당근 정책에 호응해 다시 열심히 결혼하고 출산율 증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순진하다.
팬데믹을 거치며 분명히 확인한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알던 세계화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된 신자유주의냐 복지국가냐, 여러 모델을 두고 한국을 리셋하자는 얘기로 떠들썩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약속이나 한 듯 다들 조용해졌다. “처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구호가 세기말부터 근 30여년 동안 한국 사회에 일종의 정언명령으로 작동해왔다. 어떻게 바꿀지 답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는 비록 제스처에 그친다 해도 꽤나 효과적인 주문이었다. 다만 이제는 덮어놓고 바꾸기만 할 게 아니라 지켜야 할 것부터 챙겨야 그나마 본전인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걸 어지러운 국제 정세가 대변한다. 사회 통합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기술 진보와 개방에 뒤처지지 않는 사회, 정말로 어려운 방정식이 우리 앞에 숙제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