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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내가 죽으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등록 2021-07-05 13:10수정 2021-07-06 02:39

[숨&결] 강병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번역가

외할아버지는 서른둘에 돌아가셨다. 중이염이었다. 하나 있던 동생이 신접살림을 차리자마자 인민군에게 총살당하고 2년 만이었다. 무남독녀인 어머니가 유일한 후손이었다. 당시로는 대가 끊겨 멸문한 셈이었다. 외증조모는 종일 술만 드셨다. 매일 어머니를 앉혀 두고 방바닥을 치며 통곡하다 눈을 쏘아보며 말씀하시곤 했다. “부모 앞에 가는 자식만큼 불효자가 없다. 명심하거라!” 오래 못 사신 건 당연하다. 돌아가신 후 보니 양손에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 말씀이 그렇게 듣기 싫었지만, 자식을 낳아보니 이해되더라 했다. 콤플렉스가 생겼는지 “차 조심해라, 싸우지 마라, 물 조심해라”를 입에 달고 사셨다. 귀찮게만 들렸던 그 말씀을 나도 자식을 낳고서야 이해했다. 자식을 잃은 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용기를 내시라고 말은 하지만, 아마 나는 하루도 못 견딜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식보다 오래 살고 싶은 부모가 있다. 소원은 딱 하나다.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에끼, 여보슈! 그런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이오? 있다. 중증장애, 특히 정신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의 부모다.

말이 통하지 않는 자식을 24시간 돌보는 건 진이 빠지는 일이다. 정신장애인은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계속 가족을 비난한다. 어떤 방법으로도 피할 길이 없다. 그 정도면 양반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보이지 않는 상대와 몇 시간씩 이야기하거나, 옷도 입지 않은 채 도로로 뛰어들거나, 카드로 수백만원씩 쇼핑을 하면 방법이 없다. 입원을 시키려면 응급차를 부모가 알아봐야 한다. 그나마 거부하는 수가 많아 사정사정해야 한다. 병원에 가면 온갖 서류를 떼다 줘야 한다. 어쩌다 누구에게 해라도 입히면 편견과 비난이 쏟아진다.

아이를 키워보았다면 젖병을 제 손으로 들고 빨 때의 기쁨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 하나만 스스로 해줘도 날아갈 것만 같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는 평생 그런 순간을 누리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 힘이 세진 자식이 종일 소리를 지르고, 자해하는 것을 막아가며 밥을 떠먹이고 대소변을 치운다. 돌봐주는 곳에 몇 시간이라도 맡길 수 있다면 생명 같은 휴식을 얻으련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는 사람들이 눈을 부라린다.

부모니까 참고, 부모니까 돌본다. 그러나 부모가 영원히 살 수는 없다. 나이 들고 건강이 기울면 불길한 의문이 맴돈다. “내가 죽으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부모도 하기 힘든 일을 누가 해줄까? 곁에 있어도 멸시와 수치와 냉대가 이토록 심한데, 그때는 어떻게 견딜까? 학대받거나, 방치되거나, 굶어 죽지는 않을까? 부모니까 마음을 먹는다. 자식보다 먼저 가야 한다는 이치를 거스르기로. 조현병을 앓던 딸을 23년간 돌보다 살해한 엄마는 징역 3년, 자폐 2급인 딸과 동반 자살을 시도한 엄마는 징역 4년이란다. 사법적인 판단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근본적인 질문이 따라붙는다. 과연 사회가 이들의 죄를 물을 수 있는가?

조현병을 앓는 40대 딸이 “손주 인생에 해가 될 것 같아” 살해한 78세 아비를 보도하며 언론은 ‘강제입원 절차가 까다로워진’ 탓이란다. 코웃음 나는 소리다. 사회에서 격리하면 해결되나? 장애 부모가 남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재정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 둘째 최소한이나마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관심을 기울이며 가족신탁, 공동주거시설 등 제도적 해결책을 꾸준히 추구, 보완해왔다. 우리는 어떤가? 제도가 없거나 중구난방이다. 알아서 하란 소리다.

가만, 지금 선진국이라 했던가? 우리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 아니었나? 그렇다. 우리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여력이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을 돌보지 못한다면 돈은 벌어서 무엇 하자는 것인가? 선진국 체면을 차리자는 것이 아니다. 야만에서 벗어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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