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까지 국제사회에서 ‘점령’은 정복이나 착취와 같은 개념이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패배한 나라의 땅, 주권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도 빼앗았다. 19세기 이후 인도주의 사상, 민족국가 등이 대두하면서 이처럼 가혹한 점령 개념은 사라지게 됐다. 20세기 이후에는 점령 지역에 대한 ‘일시적 통제’에 기초한 점령 개념이 자리잡게 됐다. ‘군사 점령’(영토 소유권이 군사적으로 주둔군에 있는 상태)에 대한 국제법은 1907년 헤이그 규약으로 성문화됐다. 이 규약의 핵심 내용은 “피점령 지역은 점령국의 영토가 아니며 이 지역의 주권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국제법상 군사 점령은 전쟁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전쟁 결과로 점령국이 피점령국의 영토 전부 또는 일부 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통제하면 인정된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한 뒤 38선 남북을 미국과 소련이 나눠 점령했다. 국제법상 미국과 소련은 둘 다 점령군 지위였다. 점령의 목적은 일본군 무장해제와 치안 유지였다. 맥아더 태평양 미 육군 총사령관은 1945년 9월7일 포고령 1호를 통해 스스로 ‘점령군’이라 칭하며 ‘38선 이남 지역에 대한 군정 실시’ 등 6개항을 밝혔다. 이 포고령 내용은 맥아더 장군 마음대로 쓴 게 아니라 헤이그 규약에 근거한 것이다. 미군은 1945년 9월9일 조선총독부의 항복을 접수한 뒤 군정(군사 점령)을 시작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은 ‘미 군정이 끝났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국민의힘, 수구언론이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겨냥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한다’며 공격했다. 해방 이후 38선 이남의 ‘미 점령군’은 역사적 사실이고, 국내외 역사·정치학자들이 두루 사용해온 학술 표현이다. 주한미군의 국제법적 성격은 1945~1948년은 점령군이고, 1948년 8월 정부 수립 이후에는 주둔군이다. 윤석열 전 총장 등이 펴는 색깔론 공세는 역사적 사실, 국제법에 대한 무지나 의도적 무시다.(안준형 ‘해방 직후 주한미군정의 국제법적 성격’, 이춘선 ‘해방 직후 미 군정에 대한 국제법적 검토-한국의 국가성과 제주 4·3사건을 중심으로’ 인용) 권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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