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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느슨하고 헐렁한 공동체

등록 2021-07-08 15:59수정 2021-07-09 02:37

[세상읽기]

조이스 박|영어교육가·에세이스트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안전한 온라인 공동체에 대해 다른 분들과 토론할 일이 있었다. 지역에서 청년 공동체를 꾸리고 계신 분들, 지역 공동체를 새로 만들고자 하는 분들과 모인 자리였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어 가족 공동체보다는 인터넷상의 또래 공동체를 통해 사회화를 경험하는 청소년·청년들에게 안전한 온라인 공동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나누고 있던 차였다.

그때 한 분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안전하기로만 따지자면, 가장 안전한 공동체는 텔레그램의 엔(n)번방 아닙니까? 익명과 사생활이 모두 보장되고, 자신들이 공유하는 행위를 비밀로 공유하며 유대를 다지는 얼마나 안전한 공동체입니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범죄를 저지르며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 외려 자기들끼리는 그리 안전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에 대해 긴밀하고 충만하며 아늑한 근접 거리의 공동체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진화 과정부터가 사회적인 존재인지라 공동체를 벗어난 삶을 배제할 수가 없다.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거기에 건강하기까지 한 ‘이상적’인 공동체가 불가능하다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그나마 이상적인 공동체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오프라인의 작은 지역 공동체를 꾸리는 분들은 그런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앞다투어 말씀해주셨다. 오프라인 로컬의 파워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온라인 세상에서 안전한 공동체란 여전히 환상에 가까운 걸까 싶었다.

그러다 자발적 친족(voluntary kin)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이는 혈연으로 구성되는 가족 공동체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공동체 중 하나이다. 현재와 같은 직계 부계 중심의 가족은 동서양 모두 17세기에 굳어진 공동체의 모습이다. 이 공동체의 모습이 디폴트(기본값)이고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지만, 이 가족 공동체 역시 가족이 인류 집단에 생긴 6천여년의 역사 중 친족 선택(kin selection)을 통해 구성된 하나의 양상일 뿐이다.

현대에서 가족은 외려 핵가족 공동체로 분리되면서, 가족 안에서 생물학적인 양육자가 그 역할을 잘해내지 못할 때 가족 내의 약자들이 철저하게 고립되고 방치되며, 심지어 학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 반해 소규모의 오프라인 로컬 공동체들은 가족 혹은 학교 공동체에서 청소년들이 성장의 양분을 얻지 못할 때 대신 공급해주는 지리적·심리적 안전기지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오프라인 공동체들이 비교적 잘 운영되는 비결 중 하나는 소규모인데다 멤버십에 융통성이 있어서다. 즉, 원할 때 들어와 일원이 될 수 있고, 원하지 않을 때 언제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느슨하게 맺어져 관계를 강요하지 않고,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동시에 구성원들이 각자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공동체가 외려 실현 가능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온라인 공동체를 살펴보면, 극단적으로는 범죄행위에 함께 공범이 되기 때문에 (내부자들에게만) 안전한, 돈독한 온라인 공동체들도 보이고, 흔하게는 공동의 적을 만들어서 타인을 악인화시키는 기제를 통해 소속감과 연대를 다지는 미성숙한 온라인 공동체들도 보인다. 인간의 본성에 그러한 면이 있는데다 소셜미디어는 확증편향을 부추기고 원색적인 감정들을 증폭시키기 쉽기 때문에 부정적인 공동체가 긍정적인 공동체를 일구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울 수 있다.

하지만 확증편향의 알고리즘을 걷어내고, 헐렁하고 느슨한 멤버십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당근마켓의 ‘동네 생활’이나 미국 넥스트도어의 ‘헬프 맵’을 통한 재난 중 이웃돕기 활약상을 보면, 이러한 하이퍼로컬(hyperlocal) 서비스들이 어쩌면 차세대 공동체를 구축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지역에 묶여 있으나, 개인의 일상·생각·감정을 일일이 나누지 않고 거리를 두며, 자발적으로 사안에 따라 참여하고 흩어지는 그런 공동체가 온라인상에서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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