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비거니즘은 뉴노멀이 아니라 베터노멀

등록 2021-07-11 11:13수정 2021-07-12 02:37

[뉴노멀-트렌드]
김용섭 ㅣ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구치가 지난달 새롭게 출시한 스니커즈는 목재 펄프와 비스코스 등 식물성 원료로 만든 비건 레더를 사용했다. 가죽은 가죽인데 동물이 아닌 식물로 만든 가죽인 셈이다. 시작이 스니커즈이지 향후 구치는 핸드백이나 액세서리, 옷에도 비건 레더를 쓸 것이다. 초고가 핸드백으로 유명한 에르메스도 버섯 균사체를 이용해서 만든 비건 레더로 핸드백을 만들어 연말까지 출시한다. 에르메스는 대규모 악어 농장을 여러개 소유하고 있어서 늘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지탄을 받는다. 에르메스도 악어를 죽여가면서 가방을 만드는 것이 가진 문제를 인식은 하고 있지만, 초고가 악어백 시장을 스스로 포기하긴 어렵다 보니, 당장 비건 레더를 활용하는 제품을 만들어내며 변화를 서서히 대비하는 것이다. 샤넬, 루이뷔통도 비건 레더 트렌드를 외면하지 못한다. 이들도 조만간 제품을 출시할 것이다. 진짜 동물에게서 얻은 가죽을 대신해, 인조가죽 합성가죽이 쓰이다가 이제 식물을 기반으로 만든 가죽으로 넘어가는 건 패션계의 새로운 흐름 중 하나다. 와인 양조 과정에서 생기는 포도 껍질, 줄기, 씨 등의 부산물을 활용해 비건 레더를 만들고, 파인애플 줄기와 잎에서 추출한 섬유질, 사과 껍질, 선인장, 버섯 균사체, 미역 줄기 등 별의별 식물성 비건 레더로 신발과 가방, 옷을 만든다.

럭셔리 패션 업계만큼이나 프리미엄 자동차 업계도 가죽을 중요하게 활용해왔다. 벤틀리가 100주년 기념 모델을 만들면서 포도 껍질로 만든 비건 레더를 사용했고, 메르세데스벤츠도 식물성 비건 레더를 개발 중이다. 자동차에서 가죽은 오랫동안 가장 인기 있고 중요한 소재였지만 비거니즘의 확산에 진짜 가죽을 인조가죽으로 대체하는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인조가죽 중에서도 식물성 비건 가죽이 대세가 되는 흐름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가죽 산업으로부터 동물을 구하는 건 좋지만, 플라스틱이나 탄소배출로 이어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자동차에서 가죽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선택이다. 심지어 볼보를 비롯해 베엠베(BMW), 벤틀리, 아우디 등에선 가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동차 라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장기적으론 자동차에서 가죽 소재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가죽이 주는 감성 품질은 분명 중요하지만, 동물보호와 환경 모두를 고려해 아예 가죽을 빼도 된다는 소비자가 계속 늘어나면 자동차 제조사로서도 그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트렌드가 가장 불편한 건 가죽 산업계다. 자신들이 윤리와 환경 문제에서 지탄받고, 대체되어야 할 적폐 취급을 받는 건 아주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죽을 얻기 위해서 동물을 죽이는 것은 문제지만, 우리가 고기를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고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가죽이 생겨난다. 이건 활용해야 할 자원이다. 다만 가죽 공정 과정에서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무두질이나 제조 공정에서 반환경적 방법들은 개선이 필수적이다. 무조건 과거 방식이 문제니까 다 버리자는 게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무조건 뉴노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새로움이 아닌 더 나은 것, 즉 베터노멀(better normal)을 위해 우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진짜 비거니즘이다. 비건은 식습관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식습관에서 비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의식주 전반에서 삶의 태도로서의 비거니즘을 드러내게 된다. 동물 착취를 반대하고 채식을 하는 것부터, 기후위기와 탄소배출, 일회용 플라스틱, 미세 플라스틱 등을 비롯한 환경 문제, 생태계 파괴, 인권과 차별의 문제 등으로도 이어진다. 비거니즘은 가치관이자 철학이다. 지금 시대 비거니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기업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왜 정치인들은 잘 모를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