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규|변호사·국가인권위 전 직원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로 접어들었다. 이미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 후보들이 미래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난 시절에 대한 성찰 없이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이 글에서는 인권 분야를 살펴본다.
현 정부 임기 동안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에 대한 구상과 계획이 임기 초 발표된 국정과제다. 인권 관련 국정과제는 6번째 ‘국민 인권을 우선하는 민주주의 회복과 강화’라는 제목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자율성 강화 및 실효성 확보 등’을 목표로 정하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 ‘09년 조직 축소 이전 수준으로 인권위 인원·조직 등 확대’ 아래 ‘개헌을 통한 헌법기관화, 인권기본법 제정, 군인권보호관 신설, 권고 수용률 제고 방안 마련’이 명시되어 있다.
요약하면 인권위 강화와 인권기본법 제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인권보호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인권기본법의 주된 내용은 국가와 인권위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가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해야 할 역할과 권한을 규정하여 인권보호의 제도적 틀을 종합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표명된 것만이 정부 출범 시기의 인권과제일 순 없었을 거다. 종합적인 인권보호체제 확립을 목표로 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국제기구도 납득하지 못하는, 여전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규율하기 위해 발의된 지 10년이 훨씬 넘은 차별금지법의 제정,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형제 폐지 문제도 있었다.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최악 수준의 자살 문제, 산업재해 사망 문제도 인권정책적 접근이 전제되지 않고선 풀 수 없는 과제다.
임기 말 이들 국정과제의 진척 정도는 어떠한가? 100% 이행한 사안이 있긴 하다. 축소된 부서와 인원의 원상 복구. 그러나 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단순히 한 기구의 인력 증원이겠는가. 종합적인 국가인권보호체제를 만들겠다는 큰 그림 속에 인권위 강화도 포함된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고, 이런 측면에서 과제 이행 상황은 실망스럽다.
인권위 헌법기구화는 과제 수립 후 1년도 지나지 않은 2018년 3월 청와대가 공개한 헌법 개정안에서도 빠져 있었다. 정부는 그 이유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도 않았다. 이런 태도는 과제 추진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인권기본법 제정에 대해서는 점검보고서에 ‘개선·보완 필요사항’으로 “인권기본법 제정을 위한 정부안 조속 마련 필요”(2019년), “인권보호 강화를 위한 인권정책기본법의 조속한 제정 필요, 인권위 및 관계부처 의견수렴 후 입법절차 진행 예정”(2020년)이라는 내용만 반복될 뿐이다. 군인권보호관 신설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다.
다른 주요 인권 문제에서도 별 진전은 없다. 개정 여론이 상당한 국가보안법 이적단체 찬양고무 처벌 규정(제7조)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다. 두개의 차별금지법(평등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아직 두 법안은 국회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집권당 정책위의장이 국회 내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시민들이 10만명 넘게 입법청원을 한 결과다. 2020년 기준 106개 국가가 사형 제도를 폐지한 상태다. 대통령이 “대한민국이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라는 선언이라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촉구가 있었으나 응답이 없다. 자살률과 산재사망률은 도무지 줄어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 제도를 도입하고 정보인권 보호 강화를 위해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중요한 진전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변화는 관련법인 병역법과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불가피했기에 소극적, 부수적으로 진행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미투나 스포츠 폭력사태 폭로가 이어졌을 때 정부가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을 세우고 스포츠혁신위원회도 만들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피해자들의 호소에 여론이 들끓을 때에만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더 강했다.
<한겨레>는 지난 5월 문재인 정부의 4년에 대해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선의 보여줬지만 역량 부족했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인권 분야를 보면 ‘관심과 의지가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초라한 성적표로 남은 임기를 마무리할 것인가. 촛불은 이미 다 꺼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