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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여가부를 폐지하자’는 무례

등록 2021-07-14 13:56수정 2021-07-15 11:14

지난 7월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에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에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숨&결]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

20년 전 내가 속했던 단체에서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를 개소했었다. 장애와 여성, 장애와 성폭력이라는 복합적인 이슈가 교차되면 ‘정책 핑퐁’이 발생한다. 장애가 있으니 어느 부로 문의하라고 하고, 젠더 이슈가 있으니 어느 부로 문의하라고 한다. 먼저 나서겠다고 하겠다는 부처는 거의 없다. 그래서 이리저리 핑퐁을 당하다가 대체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단체가 선택하고 해당 부처를 설득한다. 

2001년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기였고 그해 여성부가 신설되었다. 여성부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성폭력상담소를 제도화하고 예산을 지원하면서 성폭력 피해자 지원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수립해나가기 시작했다. 성폭력특례법이 제정되고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정책 주무 부처가 만들어진 셈이다.

2000년에 발생한 강원도 지역 지적장애여성 집단성폭력 사건으로 장애여성 성폭력의 심각성이 알려진 바 있어, 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안에 장애여성 피해자 지원정책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래서 여성부가 이를 수용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고 현재도 지역에서 장애가 있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상담소들이 피해자를 지원하고 조력하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에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에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지원단체는 너무나 바쁘고 정신이 없다. 한 사람의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것은 단순히 피해자에게 정보 제공이나 일회성 상담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피해자를 만나면 대다수 피해자는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피해의 맥락, 환경과 구조를 살펴서 의미화하는 과정을 통해 피해자의 탓이 아니라고 공감하는 활동을 한다. 피해자는 처음 피해를 경험하게 되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원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면 피해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필요한 자원을 연결한다. 피해자가 수사재판, 행정절차 등을 진행하게 되면 그 과정마다 전문적인 지원이나 옹호 활동을 함께 준비하기도 한다. 또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지지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한 사람의 피해자가 다시 삶의 공간에서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진지하게 공동으로 실천해야 할 일이 많다.

이 과정 하나하나를 여성가족부는 정책에서 실현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성폭력 피해자 현장지원단체의 예산은 턱없이 부족해서 활동가 인건비는 최저임금을 유지하는 수준이고 피해자 직접지원 예산도 긴급지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가부에서 추진하는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정책 결정이나 실행 과정에서 현장단체와 거버넌스나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성차별적 구조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불평등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을 여러 차례 마주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진심으로 표 계산 없이 여가부가 할 일을 다 했다거나 할 일이 없다거나 할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평가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여가부는 아직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 왜냐면 아직도 여성폭력 피해는 줄지 않은 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피해자들은 아직도 제대로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왜냐면 성평등 실현을 위한 추진체계를 범정부 차원에서 주도해야 하지만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여가부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권한도 예산도 인력도 없기 때문이다.

여가부 폐지를 논하기보다 성평등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평등과 통합의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정치인이 그렇게 쉽고 만만하게 하나의 부처를 폐지하자고 말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무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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