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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석열 전 총장에게 국가보안법은 무엇인가

등록 2021-07-14 17:47수정 2021-07-15 02:40

세상읽기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대통령 후보로서 정견을 밝히는 첫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자유민주주의’ 발언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 정권은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다.”

진보든 보수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 누구도 ‘자유’를 부정하지 않는다. 개념사적으로 파고들면야 끝이 없겠지만, 21세기 현재,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와 구별되는 고유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국가는 드물다. 동의어라고 해도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이 말한, 문재인 정부가 ‘헌법에서 빼내려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란 무엇인지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번째는 ‘권력분립’이라는 해석.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두 이념형을 ‘민중적 민주주의’와 ‘매디슨적 민주주의’로 나눈다. 전자는 다수에 의한 지배, 보통선거권, 정당과 선거의 자유를 핵심으로 삼는다.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권력이 통치한다’는 것. 후자인 ‘매디슨적 민주주의’는 권력을 ‘견제’하는 것에 제도의 초점을 맞춘다. 삼권분립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것. 따라서 선출된 권력이라도 무제한적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사법부 등의 견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윤 전 총장이 말하는 자유란 매디슨적 민주주의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선출된 권력이라는 명분 아래 독립적이어야 할 기관들의 권한이 침해당했다’며 검찰총장 시절 경험들을 재구성해 적극 내세울 것이다.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이라는 윤 전 총장 기자회견 발언 역시 이 해석에 부합한다. 이러한 전략이라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논쟁이 될 수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월성원전 관련 사건에서 검찰은 ‘죄가 있다면 수사하고 기소한다’고 했지만, 그 행위에 대해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하고, 정부 최우선 정책을 공격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정치를 한다’는 비판도 상당했다. 그런데 이 대립은 ‘윤석열 검찰의 문제’로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이다. 이미 모든 정치·사회적 쟁점은 검찰과 법원으로 깔때기처럼 모여들고 있다. 이 현상에 눈감고 그저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외치는 것은 자기편에 유리한 결과를 바라는 것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법부, 검찰 나아가 감사원 등의 독립성은 언제든 우선되어야 하는가? 아니라면 선출된 권력의 핵심 공약이나 인사권 등에서는 그 행사가 자제되어야 하는가? 선출된 권력과 대립하는 것은 공무원으로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인가? 민중적 민주주의와 매디슨적 민주주의는 본디 첨예한 대립 관계다. 로버트 달은 매디슨적 민주주의를 선출된 권력이 전문가에 의해 대체되는 ‘후견주의’라 비판했다. 이 문제가 대선의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다면,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와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 전 총장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것이라면, 퇴행적인 내용일 뿐이다. 우리 헌법, 나아가 우리 정치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사실 두 가지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하나는 앞서 살핀 문명국가 대부분이 동의하는 자유민주주의다. 다른 하나는 1972년 7차 헌법 개정, 즉 유신헌법 개정으로 우리 헌법에 들어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독일 헌법상 개념을 차용한 것인데,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와는 다르다.

헌법학자 국순옥은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통상의 ‘자유민주주의’와 구별하여 ‘자유로운 민주주의’(Free Democracy)라고 명명한다. 국순옥의 해석에 따를 때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핵심은 반공주의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명목으로 민주주의가 제한되고 후퇴될 수도 있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는 반공주의를, ‘국가보안법 헌정질서’라고까지 명명되는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2021년 한국의 유력 대선 주자가 지키겠다고 공언한 것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윤 전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그 자체다. 공안검사들에게 전가의 보도였던,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핵심적 수단이었던 국가보안법에 대한 윤 전 총장의 입장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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